
과연 원조는 달랐다. 박영현(23)이 9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도 오로지 직구만 던지는 패기로 KT 위즈를 승리로 이끌었다.
KT는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정규시즌 방문 경기에서 LG를 4-3으로 꺾었다.
이날 승부처는 KT가 4-3으로 앞선 9회말이었다. 경기 내내 답답한 흐름을 보여주던 LG 타선은 박영현을 상대로 막판 집중력을 발휘했다. 1사에서 홍창기, 박해민이 연속 안타로 우익수 앞에 공을 보냈고 오스틴 딘의 타석에선 박영현의 폭투가 나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KT 배터리는 자동 고의4구로 모든 베이스를 채웠다. 이어지는 타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LG 타자 중 가장 뜨거운 송찬의와 국가대표 4번 타자 문보경이 줄지어 기다렸다.
하지만 박영현은 송찬의를 공 3개로 1루 파울 플라이로 돌려세우며 심리적 우위를 점했다. 문보경과 승부가 백미였다. 박영현은 문보경에게 직구만 던지며 끝내 유격수 땅볼을 끌어냈다. 앞서 8회말 2사에 등판해 문성주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냈던 박영현은 1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18번째 세이브를 거뒀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박영현은 "그래도 막았으니 다행이다. 이런 걸 '어쩌라고 막았잖아'라고 하지 않나. 이제 정식 영업합니다"라고 웃었다. '어쩌라고 막았잖아'는 KBO 리그 각 팀 마무리들이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급격히 흔들리다가도 어떻게든 팀 승리를 지켜내는 모습을 빗댄 밈(meme)이다. 올해 들어 유독 그런 모습들이 자주 나오면서 팬들의 속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LG 트윈스 유영찬(29)과 KT 출신인 김재윤(36·삼성 라이온즈)이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지만, 박영현도 만만치 않다. 박영현은 "나는 지난해부터 그런 모습이 있었다. 우리 팬분들이 '영현 극장'이라고 하면서 그만하라고 하시는데 어쩔 수가 없다. 멀티 이닝이 그만큼 힘든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잘 이겨내 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게 야구다"고 미소 지었다.
올해 박영현은 12차례 멀티 이닝을 소화해 이 부문 리그 2위를 기록 중이다. 박영현을 향한 사령탑의 굳건한 신뢰는 팬들을 속상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에 그는 "사실 9회에 던진 기억보다 8회부터 던진 기억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감독님이 나를 믿고 써주시고 나도 감독님을 믿고 던지기에 나는 정말 행복하다. 지금 마운드에서 던지는 게 제일 즐겁고, 오늘(16일)은 상대가 1위 팀이다 보니 그런 타자들을 상대하는 게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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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마운드에 올라온 이강철(60) KT 감독과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이강철 감독은 박영현이 1사 1, 2루 위기에 몰리자 마운드를 방문해 다독였다. 박영현은 "감독님이 괜찮냐고 물으셨다. 조금 더 신중하게 넣자고 했고 막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셨다. 나도 거기서 (긴장이) 좀 풀리고 잘 막을 수 있었다"라며 "그 한마디가 선수들에겐 힘이 된다. 그렇게 걱정해주시니까 우리도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해피 엔딩이다"라고 활짝 웃었다.
사령탑뿐 아니라 코치, 동료들의 신뢰도 박영현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게 한다. 문보경과 승부에서 직구 7개가 나온 것도 그 이유였다. 박영현은 "우리 투수진이 전반기에 좋은 성적을 못 내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제춘모 코치님이 후반기 시작할 때 투수진에게 너희가 하고 싶은 거, 자신 있는 걸 던지라고 하셨다. 그걸 귀담아들었고 나는 직구가 장점이니까 자신 있게 던졌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아찔한 장면도 나왔다. 문보경에게 던진 공 하나가 머리 쪽으로 향한 것. 박영현은 그 부분에 "송찬의 선수가 아웃되고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몸도 풀렸는데 (문)보경이 형이 나오길래 힘이 조금 들어갔다. 처음에 가슴이 계속 뛰어서 타임 부르고 숨을 돌리려 했는데 (심판이) 안 받아주셨다. 그래서 그냥 던지자 했는데 밸런스가 완전히 망가져서 거기(문보경 머리 쪽)로 향했다. 보경이 형한테는 죄송했다"고 미안함을 전했다.
아슬아슬했지만, 확실하게 승리를 지킨 박영현 덕분에 KT는 전반기 3연승 포함 4연승을 달렸다. 3위 KT는 47승 1무 35패로 2위 LG(52승 34패)와 승차를 2.5경기로 좁혔다.
박영현은 "LG전이라고 너무 의미 부여하지 않고 시즌 중 한 경기라 생각했다. 아직 시즌도 많이 남았고 하늘이 정해주신 대로 따르려 한다. 사실 오늘은 계속 안타가 나오고 오스틴이 나오길래 '어떡하지' 하고 불안했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난 즐기면서 해야 할 것 같다. 차라리 첫 경기를 이렇게 막은 것이 후반기에 더 잘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무실점이었고 우리 팀은 이겼다. 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마무리다운 패기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