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잠룡"의 10개월

[광화문]"잠룡"의 10개월

홍선근 기자
2002.04.01 15:51

[광화문]"잠룡"의 10개월

희망을 얘기한다거나, 혹은 얘기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불과 얼마전의 암울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최근 증시는 천국이다. 어쩌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낙관론 일색이다. 거래소지수 1000은 이미 시간 문제일 뿐 우리 곁에 있다.

나는 쉽게 찾아오는 '물 1000'에 대해 회의적이고 부정적이다. 적어도 경기침체기의 극단적인 저금리처방 약효에 더 이상 의존하지 말고 한차례 정도 금리인상을 겪는 등 단련과정을 거쳐 올라가야 한다. 소수의 치고 빠지는 투자자가 아니라 전체 투자자를 위해 약간의 담금질이라도 된 '무쇠 1000'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의 시절, 높은 주가를 받쳐줄 사람의 혁신과 제도의 변화가 더욱 절실하다. 은행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김정태신화`를 눈으로 보고 있는 중이다. 김 국민은행장은 사실 주택은행장으로 발탁될 때부터 DJ가 직접 선택한 상징적 존재였다. 거기에 본인의 역량이 추가돼 신화를 만들어갔다. 은행권엔 그를 따르거나 맞서거나 하는 식으로 선순환의 바람이 불었다. 김행장과는 역량과 개성이 뚜렷히 구분되는 또다른 신화들이 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증권시장엔 아직 외관상 사람과 제도의 변화바람이 잠잠한 것처럼 보인다. 한때의 `이익치주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당초부터 변화를 목표로 삼았다고 보기 어려운 일진광풍이었고 실패였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증권의 황사장이 `잠룡`처럼 뭔가를 도모하며 조용히 움직여왔다. 황사장은 지난해 6월초 부임했다. 그는 취임 당시 "약정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사실상 회사안으로 잠적했다.

그리곤 삼성증권 곳곳에서 변화와 반발, 개혁과 뒷수습이 이어졌다. 이렇게 10개월이 지났다. 삼성증권엔 그동안 무서운 변화가 있었다. 이리저리 요란하게 떠벌리기 보다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변혁이라는 점에서 가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었다.

우선은 투명화작업이 집요하고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적과 정보의 투명화이다. 변화의 대가로 6개월여 동안 3조원가까운 약정 감소를 겪었고 수익 64억원을 날렸다. 자기돈이나 친척 돈을 끌어들여 약정실적을 쌓을 경우 감사를 통해 가차없는 징계를 먹게 된다. 감사는 수시로 이어져 벌써 150명가량이 감봉과 견책등 불이익을 받았다. 과거방식으로 회사를 위해서 일하겠다는데 회사는 불이익의 철퇴를 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의 경영인그룹엔 '2+3원칙`이 은연중에 강한 자의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당업계 2, 3위를 합친 것보다 더 나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때 진정한 1위라는 원칙이다. 증권시장도 예외일 수 없고 따라서 다른 증권사들도 긴장의 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변혁은 이제 시작일 뿐, 황사장은 여전히 조용히 갈 태세이다. 갈 길은 멀다. 황사장뿐 아니라, 은행보다도 훨씬 활력적인 증시에서 김정태신화를 능가하는 다양한 신화들이 등장, 우리가 환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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