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기업대출과 가계대출
외환위기 이전 예금은행 대출 중 25% 정도에 불과했던 가계대출 비중이 최근 34%대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기업대출에서 가계대출로 전환한 은행의 영업 방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대출이 감소하면 투자가 줄어들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 가계대출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 거품경제가 재현될 위험도 있다. 마구잡이 신용카드 대출로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그러나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아직은 가계대출 증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준은 아닌 듯하다.
우선 가계대출 증가는 은행의 위험관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전 은행대출은 대기업에 집중됐었다. 그 결과 소수 대기업이 부실화되자 은행권 전체가 동반부실을 피할 수 없었다. 가계대출 증가는 대기업에 집중된 여신을 위험관리 목적에서 가계 및 중소기업으로 다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둘째, 외환위기 이후 제2금융권이 발전함에 따라 은행의 기업여신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특히 채권시장이 크게 활성화됨에 따라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은 은행대출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시중에 자금이 넘처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용도가 낮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은행이 대출을 해주도록 종용할 수는 없다.
미국 신용카드사 파산의 교훈
그동안 불모지였던 소비자금융이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방향도 변해야만 한다. 기업대출에 비해 가계대출이 안전하다는 선입견은 가계대출이 일정규모를 넘게되면 더 이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미국 카드업계의 경험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1990년 초 미국 카드업계의 선두주자는 시티뱅크, 뱅크어메리카와 같이 자본금 규모가 큰 기관들이었다. 규제당국이 카드대출 규모를 자본금의 일정배수로 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산유동화 기법이 보편화되면서 카드업계 순위에 큰 변화가 일게된다. 카드대출을 집합한 후 이로부터 발생할 원리금 상환액을 기초로 유동화채권을 발행하여 신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자 중소 카드업체들도 카드대출 규모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었다.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사, 중소은행인 콜로니알 뱅크 등이 공격적 경영으로 업계의 선두주자가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채 5년도 지나기 전에 급성장한 카드회사들은 모두 파산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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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회사들의 파산 원인은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그에 비례해 위험도 커지는 금융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에서는 시장점유율이 커질수록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금융산업에서는 공격적으로 대출을 증가시키다 보면 신용도가 낮은 소비자들에게까지 대출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대출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기 마련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신용카드업이 급성장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경험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가계대출이 기업대출에 비해 안전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전과 달리 자산유동화 기법이 자리잡은 현 상황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급속히 가속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