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자만‘에 대하여

[광화문]`자만‘에 대하여

강호병 기자
2002.04.08 13:03

[광화문]`자만‘에 대하여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고 또 가장 듣기 싫은 식상한 소리가 바로 ‘자만하지 말라`가 아닌가 한다.

모든 게 잘될 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심정으로 의례히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로 덥석 가져다 놨을 때도 신문사설에는 이말이 단골 글감으로 올랐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잘나간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경고는 너무 힘이 없어 뵌다. "또 그 소리. 지겹군”이라는 항의마저 들리는 듯 하다. ‘구조조정 더해야한다‘고 목청을 돋우는 사람도 없고, 그런 소리 해봤자 웃기는 사람 취급받는 마당에 당연한 반응인지 모르겠다.

그런 눈총을 무릅쓰고 또한번 자만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는 것은 지금 우리경제에 관한 평가가 찬양일색이라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해야 했던 구조조정이라는 숙제를 외환위기라는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외국인이 인정할 정도로 해냈으니 축배를 들만도 하다. 확실히 우리경제는 달라진 것이 있다. 줄이고 자르고 핵심사업에 집중한 끝에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 순간 한국경제의 20년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뭘까.

우리의 구조조정은 형식상으로는 다운다이징, 내용면에서는 재무적 성과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높이는데 집중돼왔다. 그래서 죽어야할 기업은 죽고 살아남은 기업은 시장을 석권하여 저성장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현금을 손에 많이 쥐게 됐다.

그러나 그 돈으로 이제 뭘 할 것인가. 지금 기업투자는 옛날부터 해오던 것을 더 잘하는데 집중돼 있다. 분야별로도 거의 정보통신업이 주류고, 바이오, 환경, 물류 등 그 외의 산업에 대한 미래형 기업투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하드웨어적인 구조조정을 일단락됐다는 생각에서인지 투명성처럼 국제적으로 체면이 안서는 문제나 가계대출처럼 눈에 보이는 위험요인에만 메스가 가해지고 있다.

미래형 투자가 있다고 해도 너무 소심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제 막 위기를 벗어나 좀 살만한데 새로운 데 눈돌릴 겨를이 있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눈앞의 재무적 성과만 미덕으로 인식돼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우선 현금많이 버는 사람 칭찬해주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가를 암묵적으로 위험인물로 찍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한국의 간판기업들이 번돈 쓸데가 없어 무서워진 주주들을 위해 자사주 매입이나 하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반도체, 자동차, 통신 등 몇 개의 상위업종만으로는 5000만명에 가까운 우리나라 인구가 대를 물려가며 먹고 살기 힘들다. 작년에 8900달러인 1인당 국민총소득(GNI)가 3만달러의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가 매년 6.3%씩 20년을 성장해야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8일 '국가신용 A등급 회복기념 리셉션'을 갖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없이 지금의 영광을 자축하고 ‘자만말고 잘하자‘하는 덕담만 오고간다면 또 한번의 식상함을 지켜봐야할 것이다.

더욱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되돌아보고 그들을 보듬어 주려는 마음까지 보이지 않는다면 더 씁쓸할 것이다. 말로는 자만을 경계하면서 속은 자만하고 있음을 한층 더 깊이 느낄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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