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메릴린치의 공개사과

메릴린치는 올 1~3월 6억 4700만 달러(8411억원)의 순익을 냈다. 세계 38개국을 무대로 한 운용자산은 1조4000억 달러에 이른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주식의 매매 실적은 89년 이후 줄곧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 메릴린치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코만스키가 26일(현지시간) 주주총회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최근 공개된 이메일은 참담하고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객, 주주, 그리고 직원들에게 사과 드립니다."
문제의 메일은 '닷컴 전도사'로 통했던 헨리 블로짓 등 메릴린치 애널리스트들이 매수 추천한 종목에 대해 '쓰레기 같은 주식' 이라고 폄하한 내용이다. 공개적으로는 닷컴 주식을 사라고 해 놓고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에게 파는 게 낫다고 권고한, 이중적인 모습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법무장관이 이를 공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메릴린치는 비교적 당당했다. 사실 증권사 보고서의 객관성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메일로 유례없는 형사 소추 위기에 몰리자 스피처 장관의 옛 상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자문 변호사로 고용하는 등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증권거래위원회(SEC) 전미증권업협회(NASD) NYSE 등도 합동 조사에 나섰다. 칼날은 다른 증권사로도 향하고 있다. 애널리스트 보고서 논란을 대하는 월가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코만스키 회장이 공개사과한 날 다우 지수 1만선이 다시 붕괴됐다. 증권사가 객관적인 보고서를 낸다고 버블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덕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증시 회복의 토대이기도 한 투자자의 신뢰를 쉽게 되찾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