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어설픈 ‘선제적 댄싱’

[광화문] 어설픈 ‘선제적 댄싱’

강호병 기자
2002.05.09 11:05

[광화문] 어설픈 ‘선제적 댄싱’

인플레이션 파이터, 한국은행이 선제적 댄싱(preemptive dancing)을 예상보다 일찍 추기 시작했다. 7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한은은 지난해 9월 이후 4.0%에 묶여있던 콜금리를 4.25%로 올렸다. 유동성이 너무많이 공급돼 있는 상태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경제를 그냥 두면 인플레이션이라는 악마에게 당할 수 있으므로 미리부터 금리인상이라는 부적을 경제의 이마에 딱 붙여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번 한은의 액션은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다. 이번 조치이전에 보인 통화정책상의 혼선, 금리인상 결정과정, 금리인상 직후 내놓은 코멘트 등을 보면 과연 통화정책의 중심을 잡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콜금리를 올려야하는 이유와 올리지 말아야 할 이유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실의 ‘빙판’위에서 어설프게 선제적 기술을 선뵈려다 관중의 외면을 받은 꼴 아닌가 말이다. 금융시장에서도 한은의 액션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0.25%포인트 금리인상으로 늘어나는 가계대출이 잡히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불식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은이 정말 인플레이션이 접근하지 못하게 경제에 보호막을 치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번 콜금리 인상을 계기로 통화정책의 키를 긴축으로 틀었음을 시인했어야 옳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박승 한은총재는 회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콜금리 인상을 “긴축 아님!”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앞으로 콜금리 인상 카드를 더 끄집어 낼 수 있는지 여부도 분명히 하지 않았다. 한은이 긴축에 대한 강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선제적‘ 조치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려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은이 다른 동기에서 가령, 금리인상은 안된다는 식으로 초를 친 다른 경제부처에 한은의 독립성을 보여주기 위해 예상외의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측면에서도 한은의행동은 우습게 돼버렸다. 통화정책 방향에 관한 한 박 총재는 더 공격적 발언을 했다. “금리인상에 대비하라”, “2 -3개월내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했다가 환경이 불확실해지자 다시 물러섰다. 그 뒤 재경부와 금리정책 방향을 조율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시장도 당연히 이번에는 금리인상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뒤집어졌다.

그래서 중앙은행으로서의 한은이 독립성과 권위를 보여줬는가. 오히려 박 총재의 직접화법과 섣부른 말들이 더 혼란을 야기하고 중앙은행의 위상마저 떨어뜨린 것 아닌가 말이다. 2명의 금통위원이 공석인 상태에서 진행된 반쪽짜리 회의에서 2명의 금통위원들이 처음에 콜금리 인상을 반대하다 박 총재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금리인상에 동의했다는 것은 금통위를 한은 스스로 '핫바지'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콜금리 인상과정에서 한은은 얻은 것 없이 스타일만 구겼다. 금리인상 이유는 한은 스스로 평가절하해 버렸고, 금리인상 전에 예고했던 행동과 반대의 행동으로 한은의 권위조차 깎여나갔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뒷맛이 깨끗한 결정을 내려주는 권위있고 기량있는 중앙은행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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