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외국인’이라는 딱지

[광화문]`외국인’이라는 딱지

홍선근 기자
2002.05.20 16:35

[광화문]`외국인’이라는 딱지

금융시장은 참 무서운 곳이다. 겉으론 말끔, 미끈하다. 몸의 피처럼 경제에 돈을 공급, 시장경제의 꽃이라는 화려한 수식이 딱 어울린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엄청난 투쟁과 긴장, 갈등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눈 감으면 코 베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금융시장은 그보다 한술이 아니라 몇술을 거뜬히 더 뜬다. 순식간에 100배를 벌기도 하고 전재산을 날리기도 한다. 내노라 하는 회사의 시가총액이 하루에 4조원 날아가기도 하고 국가의 금융자산이 졸지에 크게 축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얼마전 UBS워버그증권이 시장을 뒤흔드는 일을 냈다. 삼성전자에 대해 강력매수를 권하던 투자의견을, 그냥 보유중인 것을 갖고 있을 정도이지 살 정도는 아니라는 ‘유보’로 두단계나 전격 낮춰 삼성전자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난리를 겪었다. 외국인 매도공세로 당일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조원 줄었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입장 표변인데, 어쨌든 시장에선 그게 통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살로먼스미스바니(SSB)에서 있었다. 지난해 6월 하이닉스의 해외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주간사를 맡았던 SSB가 하이닉스의 수익전망을 잔뜩 부풀린 보고서를 직전에 내놨다. 그리고는 1조6000억원어치를 잘 팔았다. 2개월 후 하이닉스의 주식이 투기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작성과정을 보면 둘 중 하나는 고의적인 거짓이거나 고의적인 잘못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여기에 덤으로, 최근 월가에서 드러난 메릴린치 애널리스트들의 범죄적 면모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지킬박사로서 매수의견을 내놓고는 거의 동시에 하이드로 변신해 주변에 보유주식을 팔라고 알렸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현대판이 잘 나가던 월가의 유명 애널리스트일 줄이야.

돈 앞에 진실은 없다고 말하려는가. 아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더 이상 외국인이라는 딱지를 없애는 게 시급하다는 걸 주장하고자 한다. 그냥 시장참여자의 하나로서 취급해주고 또 취급받아야 한다. 차별이나 불이익도 없고, 마찬가지로 특혜나 특권도 없는 게 맞다. 외국인이라면 뭔가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패배주의적 인식이 실력이상의 시장주도권을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측면이 있다.

거꾸로, 일단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외국인이라고 해서 더욱 분개해 몰매를 가하는 건 온당치도 않고 실속도 없다. UBS워버그나 SSB가 시장참여자로서 잘못했으면 그것 자체를 따져야지, 거기에 외국인이라는 점까지 부각시키면 되레 논점이 흐려지고 감정적인 대응인 듯이 보이고 만다.

감독당국이 먼저 사대주의에서 깨어나야 한다. 가령 과거 현대그룹 사태 때처럼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민감한 보고서를 내면 사실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루머유포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반면 사실 왜곡의 여지가 있는 외국 증권사의 보고서는 그냥 지나간다. 감독당국은 국내증권사를 만만하다는 이유로 심하게 역차별하고 있다. 사대주의가 별 건가, 이런 거지. 시장의 건강성을 해치는 짓을 못하게 하는데 외국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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