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와 정책의 근시안
국내 한 통신업체 관계자가 중국 신식산업부(우리의 정보통신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업체와 제휴할 경우 기술-경제 측면에서 종속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우리 통신업체와 제휴가능성을 타진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우리 통신업체도 중국의 무한한 시장수요를 어떤 식으로라도 선점하기 위해 우리의 우수한 기술력과 통신 성공사례를 얘기하려던 참이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측의 한 관계자가 "한국은 제1 사업자가 1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갖고 있다"며 가입자를 이만큼 끌어들일 수 있었던 기술력과 상용화 배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무심코 듣고 있던 중국 관리는 "우리나라에서는 3개월이면 가입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고 웃어넘기고 말았다.
90년대 중반 국가로는 세계 처음으로 도입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이 이제 우리 시장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제는 가입자가 포화상태에 달해 세계로, 특히 중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통신정책이나 기술드라이브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에 대해서는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기존의 미국식이나 유럽식 통신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체 고유방식을 개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3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개발 중인 이른바 TD-SCDMA (Time Division-Synchronous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방식을 채택한다는 요지의 발표였다.
이같은 발표가 있자 국내 일부 언론과 업계는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이제 우리가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이동통신 방식인 CDMA로는 중국 시장을 넘볼 수 없게 됐다"며 경고 호각을 불어댔다. 이 발표는 중국의 대 선진국용 압박카드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국도 자체 기술을 강조하지만 결국은 전세계 표준 방식을 함께 채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그동안 우리가 개발해온 CDMA을 일부 통신업체에서 채택한 것은 물론, 유럽식 3세대 이동통신(WCDMA)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번에 제안한 TD-SCDMA 방식은 중국 통신사업자중 마이너리그의 한 업체가 떠맡게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3세대 이동통신(UMTS)은 대전제가 글로벌로밍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로밍은 말 그대로 전세계 어디서나 개인이 소지한 단말기로 통화할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1,2 세대 통신에서는 이같은 표준이 만들어지지 않아 나라마다 다른 방식의 표준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단말기 표준과 통신프로토콜을 유지해왔었다. 그러나 3세대는 지구촌 시대의 통신을 만들자는게 전세계 통신학자와 정책 당국의 콘센서스였다. 중국이 독자적인 표준 방식만을 쓰면서 이같은 대세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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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부와 업계가 현재 중국 통신정책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마치 우리의 기술인양 떠들며 CDMA 찬양론을 내세우는 이들이 판을 치면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는데 등한시해온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세계 85%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WCDMA 시장을 대비해 2~3년 전부터 개발에 주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때 준비했더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CDMA에 이어 또다른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무시하는 쪽이 대세를 이뤄 호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이들은 3세대를 뛰어넘어 바로 4세대로 갈거라는 얘기까지 늘어놓았다. 4세대는 3세대 기술
기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들이 몰랐을리 없다. 심지어 일부 무지한 통신업체의 대표와 연구 기관의 간부들중에도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던 것이다. 결국 CDMA 하나를 살리기 위해 차세대를 준비하는, 준비했으면 충분히 우리가 선도할 수도 있었던 기술을 놓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제 노키아 에릭슨 NTT도코모 등이 이 기술로 전세계 시장을 장악하려는 상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를 보면 통신업체와 정책 당국의 근시안에 첨단 안경이라도 하나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