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미국과 흥정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에 잃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마라"
일제시대와 군정, 6·25 등 수난의 근세사를 몸으로 직접 겪은 어르신들. 그런 분들로부터 유년시절 종종 듣곤 했던 말중의 하나다.
당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유지될 수 있어 왔던게 미국 덕택이라는 믿음으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그런 말들을 한 어른들은 반미주의자인가. 반미는 곧 용공으로 여겨질 그런 체제하에서. 더구나 6·25의 충격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실제 형제자매마저 잃어버린 그런 세대임에도 말이다.
그건 아닐 것이다. 냉혹하리만치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따지는 그런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고가 아니었던가 싶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반미 정서의 강도가 높은 것 같다. 참여정부 출범을 전후해 조성됐던 반미 감정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위정자들마저 정권 초기의 태도를 바꿔 진화에 나설 정도다. 각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 파병 결단마저 성사됐다.
그런 시점에 미국이 주한미군의 재배치론을 우리 정부에 제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앞서 우리 정부는 북핵 해결 전에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반대한다는 등의 원칙을 미국측에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 더욱 미국이 왜 이렇게 나오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감정적 대응이 아니냐는 해석에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어쨌든 우리 정부로서는 심층분석을 통해 합리적이고 정교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주한 미2사단은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단순한 사단급 병력이 아니다. 거의 군단급 사단으로 불러야 어울리는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군대다. 그래서 그네들의 공백을 메우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안보상의 문제 뿐만 아니다. 경제적 파장 또한 심각히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다.
말이란 한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주한미군 재배치든, 주한미군 철수든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내부의 역량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
냉정한 국가간의 흥정에서 의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단순화된 친미나 단순화된 반미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누가 미국을 우리의 오랜 동맹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또 누가 미국이 우리의 영원한 동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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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아니면 친미, 친미 아니면 반미. 그런 극단적인 이분법은 군사독재 시절의 유물로 치부해야 될 때가 아닌가. 6·25를 모르는 세대들하고 뭔 얘기를 하겠느냐는 기성세대. 미국이라면 무조건 반발부터 먼저 하는 게 자주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지금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우리의 실익을 철저히 따지는 태도가 절실할 때다.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에 잃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마라는 어르신들의 지적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