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차라리 청와대에 돈을 주자

[시평]차라리 청와대에 돈을 주자

류석기 이사 심의실장
2003.04.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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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차라리 청와대에 돈을 주자

희대의 측근 부패로는 청(淸) 건륭제 연간의 난신 화신을 꼽는다. 24년 대신을 지내며 그가 긁어모은 재산은 무려 8억량. 당시 최고 부국이던 청조(淸朝)에서도 10년간의 국가세입과 맞먹는 거액이다. 화신은 몰락한 만주귀족의 후손으로 한때 동전 한잎이 없어 밥을 굶은 투전꾼 출신이다.

 

우리 현대사에도 `측근 부패의 화신(化身)'은 많다. 전두환 노태우의 본인 부패는 말하기도 싫거니와, 5년 단임 정권이 정착되고도 악순환은 되풀이돼 왔다. 한푼도 안받겠다던 김영삼 정권 때 측근인 장학로 홍인길, 아들 김현철이 덜미를 잡혔고 김대중 정권에선 아들 3형제와 권노갑 고문이 유혹에 넘어가 일을 냈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최근 청와대 보고회를 갖고 친인척 등 권력형 비리에 대해 다중감시체계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서슬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정권 초기에 늘 듣던 소리거니 한다. 벌써 측근이 나라종금사건에 얽힌 구설수가 나도니 말이다.

 

우리나라 권력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 뭔가 한탕을 노리는 검은 손들이 호시탐탐 측근을 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여건은 너무 허술하다. 청와대 예산을 따져보자. 청와대 비서실이 국회 심의를 받는 정부예산을 받은 것은 놀랍게도 1993회계연도부터다.

정부 수립이 48년인데 그동안 청와대는 뭘 먹고 살았나.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예산(?)은 부근 한식집 안방에 놓아둔 대형 금고에 보관했다 한다. 로비스트들이 뭉칫돈을 싸들고 와 한식집 금고에 돈은 착착 쌓였고 관계자 몇 명이 열쇠를 갖고 필요할 때 꺼내 썼다. 한 경제비서관은 비서실 각 방에서 쓴 외상영수증을 매달 재벌그룹 재무팀에 돌리는 일이 업무 중 하나였다.

 

이런 식이니 청와대는 쥐꼬리 예산을 타느라 국회 눈치 볼 이유가 없었다. YS정권에 와서야 청와대가 공식 예산 편성에 들어간 까닭은 이런 부끄러운 사정 때문이었다. 기가 막힌다. 올해 청와대 예산은 464억원이다. 서민들이 보기엔 큰 돈이나, 한 나라의 권부가 1년간 살기에도 과연 넉넉한 금액일까.

지금까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위 통치자금이란 명목 아래 국회의 공개심의를 받지 않는 국가정보원 예산 중 일부를 당겨 쓰는 게 관례로 알려진다. YS-DJ정부 때 청와대 근무를 한 인사들이 대개 시인하는 얘기다.

 

개혁을 하려면 저항에 부딪힌다. 방법을 놓고도 백 사람의 의견이 다르다. 많이 듣고 설득하려면 품과 시간이 든다. 만나 맹물만 마실 수 없으니 돈도 꽤 든다. DJ정부 때 정치인 장관과 교수 출신 투자기관장이 판공비로 반목하다 기관장이 중도퇴진한 사례는 유명하다. 새 정부의 청와대 측근에도 교수, 재야 출신 인사들이 많다. 예산상 장관급의 판공비가 월 기백만원 안팎이니, 요즘 청와대 고위인사 중 몇몇은 밥값 대느라 남 몰래 한숨 쉬고 있을 것이다.

 

3급 이상 공무원의 판공비내역 공개 방침이 혹시 이런 형편중에 돌출된 궁여지책이 아닌지 궁금하다. 순진한 발상이자 거대한 실험이다. 지난해 정치자금법상 국고보조금 1139억원을 여야 각 당에 나눠줬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를 하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치자금법상 수혜 대상에서 빠져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국가경영도 예외가 아니다. 차라리 청와대에 돈을 주자. 공식예산도 좋고 국고보조도 좋다. 아예 청와대가 후원금을 모을 수 있게 허용하면 어떤가. 측근의 부패를 막아 투명한 정권을 지킨다는데 왜 성금을 보내지 않겠나. "이 정권도 별 수 없구먼"이라는 푸념도 이젠 정말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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