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청와대 정책실장의 역할
청와대의 수석비서관 자리는 참 어려운 자리다. 대통령의 신임과 본인의 능력, 의지에 따라 그 임무와 영향력이 천변만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과거 경제수석의 입지는 이런 가변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떤 경우에는 관련 부처 장관을 제치고 실질적인 경제대통령으로 경제정책을 총괄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관료들의 집중견제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불구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가변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수석의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대략 대통령의 경제분야 가정교사로서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뜻을 경제부처에 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부처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대통령에게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수시로 이곳저곳에서 경제현실이나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을 청취하여 이를 의사결정과정에 반영시키는 것도 중요한 역할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경제수석 자리는 이번 정부 들어 표면적으로 보면 더욱 강화되었다. 정책실장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활동을 시작한 이 자리는 비서실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사자가 하기에 따라서는 단기적인 경제현안과 장기적인 국정과제를 동시에 아우르고, 북핵 문제처럼 정치와 경제의 경계선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개진하고 대책수립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경제정책에 관한 청와대의 보좌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대답은 “부정”이다. 왜냐 하면 경제관료가 중요한 경제현안에서 지속적으로 정책적 과오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실장이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4.3 신용카드 대책이다. 이 문제에 대한 원론적인 (그리고 또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먼저 사태가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금융감독기구의 감독책임자를 엄중히 문책하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해당 카드사의 임직원을 징계한 뒤, 재무건정성이 위협받은 카드사에 대해서는 적기시정조치를 발동하고, 재정지원이 필요한 카드사에 대해서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한 뒤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관료가 내놓은 대책은 이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우선 감독기구내에서는 단 한사람도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카드사 임직원에 대한 문책도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자산관리공사와 여타 금융권이 돈을 넣지만 어떤 법적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저 “노란 봉투”만이 일방적으로 횡행했을 뿐이다. 사태가 이지경인데도 불구하고 정책실장은 이를 적극 제지하는 데 실패했다.
혹자는 현재 정책실장이 이처럼 경제현안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구조적으로 재정과 금융등 경제현안은 경제부총리가 담당하고, 정책실장은 동북아 프로젝트 등 장기 대형 국정과제를 담당하는 식으로 교통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크게 잘못된 분업체계이다. 거의 모든 경제문제는 재정과 금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능을 포기하는 순간 청와대의 경제보좌 기능은 즉시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책실장은 분발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널리 주변의 여론을 청취하여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이 혹시라도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는지 더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높일 각오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편법과 타협하는 경제정책을 용인하는 순간, 자신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활동 공간도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 곳에는 노련한 경제관료들의 즐거운 춤판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