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미국은 확실히 변했다
동료 교수가 얼마 전 미국 대학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 화제가 9.11 테러로 옮겨졌다. 미국 대학 정치학과 교수와 어느 날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정치학교수가 9.11 테러 얘기를 하다가 울더라는 것이었다.
혹시 가족이나 친지가 희생당한 일이 있느냐고 나중에 물어보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필자로서도 충격적인 얘기였다. 9.11 테러가 미국인들을 변화시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변화가 어떤 정도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미국은 확실히 변했다. 이라크 전쟁을 모든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행한 배경에는 9.11 테러생각만 하면 분하고 억울해지고 그래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그 싹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많은 국민들의 울분에 찬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거리에 나와 반전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뉴스로 접하면서 부시 대통령이 상당한 반대에 봉착하는 줄 알았지만 말없는 다수는 전쟁을 수행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냈다. 전쟁 중 지지도가 70%에 달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자중에는 아마 9.11 테러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 그 정치학 교수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모습에는 독기가 서린 듯하다.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작년 하반기 대규모 반미시위가 벌어졌던 우리나라에 대해 마치 보복을 하듯 미군의 후방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만일 미군 후방배치가 실현이 되면 이는 북한이 남침할 경우 최전방에 배치된 미군은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는 인계선(TRIP WIRE)의 개념이 무너진다.
후방으로 배치된 미군은 북한의 침공을 보면서 전쟁참여 여부를 선택하는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최악의 경우 전쟁불참을 결정하고 한반도에서 퇴각을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게 된다. 한반도 전쟁이 미군의 필수과목이 아니라 선택과목이 되는 것이다.
최근 베이징 3자 회담을 보아도 그렇다. 미국은 중국을 이용하여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는 별로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곧이어 열린 장관급 회담을 보면 북한이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의 NCND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한미 합동군사훈련 같은 부분을 문제삼았다. 우리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데도 양자간 중재자의 역할은커녕 미국과 북한에 의해 거의 “왕따” 당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GDP는 10조달러 우리의 GDP는 4700억달러이다. 연간 소득이 이 정도 차이가 나니 쌓인 국부 규모 차이는 더욱 엄청나다. 우리 경제는 1인당 1만달러를 만들고는 IMF위기를 맞고 추락을 했다. 5년만에 겨우 다시 1만달러 수준으로 복귀했지만 그 사이 노령화추세가 심해졌고 재정은 공적자금으로 인해 자꾸 나빠지고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고 이민을 가겠다는 응답이 50%를 넘는다. 경제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외치기에는 힘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다.
5월에는 노대통령의 방미가 예정되어 있다. 대통령의 방미에 거는 투자자들의 기대는 상당하다. 국내 투자자는 물론 해외투자자들의 우려어린 시각을 일시에 잠재워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상당한 카드를 준비하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의 모멘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부시정부의 재선여부가 결정되는 2004년 11월까지 만이라도 더 이상의 불이익은 받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