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투자자 주권시대'
집단소송제의 도입이 산고를 거듭하면서 가닥을 잡아 가고 있는 와중에 분식회계 사면에 대한 찬반양론이 가열되고 있다. 분식회계는 일부기업에 한정된 예외사항이라고 지금까지 감독당국은 발표해 왔다. 심지어 미국의 엔론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회계감리가 철저해 회계의 투명성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한 수 위라는 감독당국자의 발언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분식회계에 대한 일괄사면론이 고개를 드는 것을 볼 때 속고 살아온 투자자들은 언제까지 속아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넘어 가는 할머니에게 호랑이가 팔 하나만 떼어 주면 잡아먹지 않는다고 해 팔 하나를 주었더니 계속 같은 요구를 하다가 결국 할머니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분식회계에 대해 일괄사면을 하면 향후 분식회계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그 어떤 보장도 없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쫓아 낼 수 있는 힘을 가져야지 호랑이의 자비심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지금 까지 투자자들은 회사의 경영진들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면서 기업경영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들은 소액주주들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주주들은 기업의 경영에 대해 투명하게 공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성실공시가 대부분이었고 이것마저 주가조작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 이를 감시하고 처벌하여야 할 감독당국마저도 이에 대해 소홀히 하였다. 한마디로 소액투자자들을 표현하자면, 보안관이 없는 외딴 마을에서 악당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선량한 양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집단소송제는 악당들의 괴롭힘에 항거하여 양민들이 집단으로 봉기하는 것이다. 양민 한사람 한사람은 힘이 없지만 집단으로 대항하면 악당들과 맞설 수 있다.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군주들이 오히려 시민을 억압하자 이에 반발해 일어 난 것이 시민혁명이었다. 시민혁명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집단소송제이다.
양민들이 집단으로 봉기할 때 제기되는 문제점은 제 3자의 개입이다. 생업에 종사하여 마을 발전에 힘을 쏟아야 할 양민들이 제 3자의 충돌질에 의해 너무 자주 봉기하면 마을이 발전할 수 없다. 더구나 충돌질을 업으로 하는 제 3자는 악당 축출에 대한 대가에만 관심이 있지 악당 축출 후의 마을 발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양민들과는 애초부터 출발점이 다를 수도 있다.
이제는 기업의 흥망성쇠에 가장 민감한 투자자들이 직접 나서서 기업을 감시하여야 할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는 대주주의 횡포 및 감독당국의 무관심에 지친 투자자들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투자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할 때, 외국에 비슷한 사례가 별로 없다 또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등의 이유로 투자자 주권시대의 도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업가치 극대화를 통한 주주중시경영이 왕도라는 말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만고불변의 진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