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디플레 원인과 대책
수년전부터 일각에서 거론되던 디플레이션이 이웃나라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이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다.
최근의 디플레이션은 생산성증대에 따른 유익한 디플레이션과는 달리 30년대와 같이 구조적 수요부족에 의한 해악적 디플레이션으로 현재 일본과 독일에서 과잉생산, 기업부실, 금융부실의 과정을 밟으며 전개되고 있다.
모순적으로 보일만큼 현 디플레이션의 징후는 그동안 우리가 성공적으로 추구해온 노력의 부산물이다. 인플레이션에 익숙한 경제주체들은 냉전 이후 모든 정책노력을 인플레이션 방지에 맞추어왔으며,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생산성 증대에 대한 기대는 자산시장호황으로 이어져 튼튼한 수요기반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세계화추세에 따른 아웃소싱과 규제완화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세계적 분업체계를 형성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에 기여했다. 이제 이러한 패러다임의 부작용이 부각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주식시장에 반영된 기업수익성의 한계는 투자기회의 축소이며 시중자금의 부동화와 부동산 열기의 원인이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등 자산시장 위험에 대한 노출은 부실을 통해 시간을 두고 또 다른 디플레이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수십년간에 걸친 인플레이션 관리정책노력과 기술발전, 부실채권 등은 현 디플레이션 확산의 주요인이다.
앞으로 디플레이션의 조정과정은 주로 환율변화에 대한 압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일본의 사정상 엔화강세를 장기간 허용하기 어려운 실정이고 미국도 쌍둥이 적자로 위험회피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조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원화는 절상압력을 받을 것이고 이는 수출전선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가져올 것이다.
물론 절하를 통한 대응은 경쟁국들의 환율전쟁을 촉발하기 쉬우며 많은 나라들은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해외디플레이션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의 제품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흐름은 악화될 수 밖에 없으며 고용유지는 점차 어렵게된다. 가계부문은 당장 소득과 신용흐름의 위축으로 씀씀이를 줄일 수 밖에 없으며 자산보유자들도 담보가치조정에 대한 금융부문의 위험회피가 확산되면서 점차 자산매각에 나서게 된다.
즉, 그동안 부채를 크게 늘여왔던 개인부문의 포트폴리오조정은 금융부문의 부실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증분석결과 디플레이션이 가장 확실한 은행위기의 원인이며 장기침체의 도화선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 상황의 연장은 기업수익악화와 자산가격의 조정 및 금융부실의 증가, 그리고 실물부문의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테그플레이션을 우려했던 우리들로서는 기대적응에 상당기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나 생각보다 빨리 디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미 세계경제의 주축인 일본과 독일 상황이 빠르게 세계로 파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금융이든 실물이든 아니면 순전한 전염경로이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인플레이션 요인만으로 해외 디플레이션을 차단하기는 어렵다. 경쟁환경하에서 일국의 가격하락은 곧 바로 수익악화를 뜻하며 임금과 물가가 조정되기 시작할 때면 이미 전면적인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우리로서는 그나마 디플레이션 기대가 시장에 확산되기 전에 다가오는 냉기류에 노출되는 부문을 최소화해야 한다. 첫째,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현금위주로 레버리지를 줄이고 국가차원에서는 성장동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새로운 시장확보노력을 최대한 경주해야 한다.
공포의 전염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용과 성장의 새로운 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둘째, 부실처리부담을 지연시켜서는 안된다. 일본의 경험을 보더라도 부실누적은 금융기능의 마비로 실물경제의 회복가능성을 저하시킨다. 셋째, 정책구사는 사후적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의 과열기미를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강화될 경우 우리는 디플레이션과 연관된 최악의 상황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