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盧 정부 '100일의 방황'
6월 초가 되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된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일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기간이었다. 아니 다사다난 보다는 우왕좌왕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른다.
취임 벽두부터 SK 글로벌의 수사외압과 관련하여 경제부총리와 금감위원장이 큰 홍역을 치렀다. 국무총리가 경제정책에 개입하는가 하면 부총리가 중앙은행의 고유영역인 통화정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평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중앙은행 총재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금리를 인하한다고 발표하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 카드사를 도와주는 억지대책을 발표하던 금감위 공무원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희대의 망발을 뱉어냈다. "관(官)은 봉사(serve)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공복(公僕)이라는 개념은 이제 우리 공무원 사회에서 영원히 증발해 버린 것인가.
그러나 경제정책의 희화화(戱畵化)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정책이 경제문제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추가적인 문제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SK 글로벌의 처리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이 사건의 핵심은 분식회계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식의 실상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책임자는 사법처리하고, 기업 자체는 추가적인 비용부담 없이 채권단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리하면 된다. 그러나 채권단은 아직도 다른 SK 계열사의 지원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지난 5년 동안 김대중 정부가 그토록 자량해 왔던 기업 지배구조의 개혁은 모조리 거짓말이었어야 한다.
신용카드사 문제와 관련한 4.3대책은 금융감독정책상의 편법과 탈법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예외가 아니라 원칙임을 재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응당 발동해야 할 적기시정조치를 회피하기 위해 감독기준을 제멋대로 변경하고, 금융기관들에게 지원을 강요하고, 옵션 CP 매매 등 각종 탈법적인 거래를 그대로 묵인하는 등 이번 카드사 대책은 "시정해야 할 불행한 관행들"을 총망라한 전시회였다.
물론 이번 사태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감독당국의 책임자들이 버젓이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결국 문제는 실제로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시장에서는 틈만 나면 몇월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
금리인하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등은 이번 정부가 악화시킨 경제문제의 전형적인 예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김대중 정권 후기를 담당했던 경제관료들의 작품이다. 그러나 최근의 금리인하 정책은 도처에 깔려 있던 투기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관련 대책이 발표되고 있지만 한 탕을 노리는 국민들의 관심은 도대체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역대 정권의 예를 보면 정권 초기의 100일은 정권의 업적과 관련하여 정권 후기의 2 - 3년에 비견될 만큼 중요하다. 모두가 잘해 보려고 노력하고, 국민도 신생 정권을 지지하고, 언론이나 야당과의 밀월 관계도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 정부는 최초 100일을 완전히 허송하였다. 개혁에의 의지도 없고, 현실을 적절히 관리하는 노련함도 없었다.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한데 벌써사회에서는 "국민 해먹기 어렵다"는 푸념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경제팀의 인적 청산에서 시작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흐름을 바꾸려면 그 길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집권세력과 국민 모두 앞으로 불행한 4년여를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