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노동운동의 반개혁 코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절정은 1987년이었다. 그해 `6-10 시위'를 신호로 한 `6월항쟁'은 노태우 대권 후계자의 `6-29선언'을 이끌어 냈고 `7,8,9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폭발적인 그 힘에 군부정권의 공포정치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노동운동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 독재에 항거하고 인간적인 삶을 요구하는 정치운동이었다. 그것은 70년대 청년 전태일이 분신하던 때보다 훨씬 복잡한 코드였다. 학생운동권은 `농활'을 `공활'로 전환해 노동운동권의 정치성을 강화시키면서 노학연대의 강력한 힘을 분출해 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강성노조와 정치지향성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는 노동운동이 곧 민주화운동의 한 부분이었다. 대중의 지지도 여기서 나왔다. 다행히 87~89년은 유례없는`3저호황기'여서 정치-사회적 혼란과 충격을 감당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달랐다. 운동권에서는 `주사파'가 확산되면서 `민주화 이념'에 변질이 나타났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논쟁과 극단적인 과격성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설상가상 잘나가던 경기는 기울고, 1000포인트를 돌파한 주가마저 급격히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이동하는 `제3의 물결'은 386세대가 주도한 운동권에 새로운 철학과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변하지 않앗다. 노동계 리더들은 80년대식 대립적 노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투쟁하고 쟁취하는 구식 전략과 전술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과실은 집단 이기주의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힘있는'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틀어쥘수록 `백없는' 실업자들은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워졌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노동운동의 현주소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최근 상생의 터전을 허무는 파괴적인 노사관계를 뜯어 고치겠다고 나섰다. 하루라도 빨리 해야 할 일이다. 영미식,독일식,네덜란드식 등 남의 나라 모델을 두고 말도 많은 상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한국식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없다.
노무현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노동정책은 누가보더라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노조편향에서 법과 원칙으로 그리고 다시 대화와 타협으로 중심축이 오락가락하면서 노사간 혼선이 증폭됐다. 노무현 정부의 노사개혁 구상도 실속없이 소모적인 논란만 격화시킬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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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를 뜯어고치려면 노-사 모두 상대방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특히 노동계는 지금도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노측에 남아 있는 것은 그런 명분이 아니라 비타협적 투쟁노선 뿐이다. 노동계가 이런 `반개혁적' 낡은 코드를 버리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정부의 노사개혁안이 직시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부분도 바로 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