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정재식 구조조정론
지난주말, 제주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은 경영자들에게 "현상황을 위기로 보는 것은 비약"이라며 "기업인을 도울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이정재식 구조조정론'과 맥이 닿아있다.
이 위원장은 앞서 21일 간부회의에서 "구조조정이 과거와 같이이해되고 있어 시장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있다"고 며 구조조정의 개념을 재정리해 시장에 명확히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16일에는 한 강연회에서 국내 금융산업이 '자발적 구조조정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구조조정이 시장에서 자율적이고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단기대책보다는 장기시스템 마련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라고 금감위는'주석'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정재식 구조조정' 개념은 말그대로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소지가 없지 않다. 얼마전 금감위 직원들의 면전에서 직무유기를 지적한 참여연대 교수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눈만 돌리면 '구태와의 전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카드사 후순위CB가 날개돋친듯 팔리는 것은 고리(高利)를 대가로 유동성위기만을 넘기고 있는 것인데도 '상황 끝'으로 여기는 분위기이다. SK글로벌 제재는 반년이 지나도록 '검토'만 하더니 '법률해석'의 문제를 들어 또 다시 휴가철 뒤로 멀찌감치 미뤄뒀다. 현대산업 BW 부당발행 의혹은 시민단체의 아우성에 못이긴 대주주가 '원상복귀'까지 했음에도 감독당국의 조치는 하세월이다. 2금융권 구조조정은 말을 꺼내는 것조차 우습다. 그럼에도 금감위는 전시 상황실 같던 과거의 모습을 너무 빨리 벗어던진 듯하다.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게 능사는 아니라는데 이의를 달수는 없다. 하지만 금융감독 수장의 반복되는 '장기 낙관론'은 거꾸로 조직구성원의 게으름과 시장의 오판을 낳을 수 있다.
그레고리 맨큐는 경제학원론에서 정책담당자들을 향해 "장기에는 우리가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고 꼬집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한참 있으면 바다가 잠잠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역할은 쓸모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휴가철 제주의 바다와 달리 금융시장의 파도는 당국이 뱃전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