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조급함의 자기기만

[시평]조급함의 자기기만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3.10.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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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조급함의 자기기만

조그만 호수에 떠있는 배의 속도는 노젓기에 달려있다. 그러나 망망대해에서는 노젓기만으로는 제대로 전진하기가 어렵다. 자체동력도 중요하고 배의 모양이나 크기도 조그만 호수의 경우와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경제가 회복세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이유는 근본적 차원의 자발적 구조조정이 당장의 빠른 성장에 대한 집착으로 종종 도외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위기이후의 구조조정이 부실정리위주의 청산절차였다면 이후의 구조조정은 변화된 환경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는 경제체제의 구축이어야 했다. 그러나 신속한 경기회복이후 새로운 신용흐름의 변화속에서 우리는 잠시 방향감각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현실은 한마디로 안정성장에 필요한 제반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고 작동되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대신 허술한 체제의 일시적 안정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치러졌기 때문이다. 우리경제는 최근 수년간 인접 거대시장과 자산시장효과에 의존하여 비교적 순항해 왔으나 이제 본격적 시장평가에 직면해 있다. 기로에 선 우리경제의 주요결정이 중장기적으로 역량을 배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점차 무력해지는 경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적지 않은 채무상환부담과 더불어 인구의 노령화와 산업공동화는 체제상의 개선이 시급함을 일깨워준다. 개방이 운명인 현 여건하에서 체제개선의 핵심은 결국 해외자본의 장기수용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일련의 연구결과는 자본자유화의 혜택을 제대로 구가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단순한 산업정책적 차원의 노력을 넘어서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법질서가 중시되는 사회분위기, 각종 법체계의 정비, 시장에서의 정보비대칭성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감독체계 및 각종 인프라, 정치나 관료조직의 개방정도, 교육이나 노동분야의 효율성 등의 제반요인이 강조되는 현실은 한마디로 금융체제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고는 안정성장이 불가능함을 반증한다. 다양한 수요기반에 대한 안정적 자금공급은 기본적으로 앞에 열거한 각종 위험에 대한 최선의 평가를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자금흐름의 편중과 단기화가 반영하는 우리의 어려움은 체제적 준비를 소홀히 한 댓가이다. 그 결과 자원배분은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면이 크다. 과거에 고도성장의 결실을 안겨다준 체제는 위험관리차원에서 비교적 책임소재가 쉽게 파악되는 금융억압과 관주도의 체제였으나 위기이후 시장작동이 취약한 상태에서 전환기의 불투명한 사회지배구조는 불확실성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아직도 사회의 많은 부분은 과거의 틀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시장의 신호가 무시되고 왜곡된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효율적인 자원배분은 기대하기 어렵다. 위험기피가 화두로 떠오른 상태에서 부동산 불패신화에 사로잡힌 많은 경제주체들은 부동산도 수익흐름이 뒷받침되어야하는 자산의 한 형태임을 간과하기 쉽다. 시간선호도가 유난히 높은 우리로서는 당장의 수익이 그만큼 중시될 수 밖에 없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아파트와 건물들은 지금의 투자가 과연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선택인지 의심케 한다. 부동산 투자는 당장 자기기대실현적 투자로 인식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위험을 높이는 선택이다. 서구와는 달리 우리의 소모적 투자패턴은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본소모가 큰 탓에 자본 축적이 그 만큼 더디게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왜 우리는 미래를 잠식하는 선택에 메달리는 것일까? 혹시 조만간 정리해할 것들을 우리는 무모하게 쌓아올리는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는 어디서부터 새로운 성장패라다임을 구축해나갈 것인가? 답은 가능한 깊숙이 시장의 평가에 노출되도록 사회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기득권의 자발적 결단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이익보호는 본능적인 것이나 오직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이를 지켜나가는 사회적 공감대가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정치와 시장의 상충관계를 지도층의 리더쉽으로 극복해나갈 때 현재 우리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단단히 결속된 기존 지배구조의 틀속에서 비효율성으로 귀착되던 요소들이 시장평가에 직면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파괴의 과정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작동에 필요한 제도구축과 기관육성노력을 체제적 개선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며 이러한 원칙이 시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꿀 수 있다. 투자의 미래가치가 중장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 기본 노력이 높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조급함으로 성장률을 높이려 하기 보다는 지속된 체제개선을 통해 정진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물론 금융발전은 이러한 노력의 시금석으로 간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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