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하여
최근 한나라당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면서 이 제도의 운명이 다시금 정치권의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이러하다. 회계관련 3법이 통과되어 기업회계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증권분야 집단소송제도가 이번 회기중 국회를 통과하면 분식회계의 문제도 줄어들 것이니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물론 회사의 내부통제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기업활동과 관련한 모든 정보가 완벽하게 공개되거나 이를 확인, 점검하는 데 비용이 `0'이고, 기업의 독과점적 행동에 대한 공정거래법 차원의 제재가 확실하다면 이 제도는 불필요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아마도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불협화음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논의를 더 전개하기에 앞서 한나라당의 주장부터 짚고 넘어가자. 회계제도 개혁과 집단소송제는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출자총액제한제도 개편의 필요조건중의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후적인 교정장치를 이용하는 데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들 제도의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한나라당의 주장은 “집단소송제를 우리가 허가해 주었으니 너희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포기하라”는 물물교환식의 정략적 발상일 수는 있을 지언정, 이 제도의 존폐와 관련한 참된 주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제도의 효과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배주주의 실제지분과 그가 행사하는 기업통제권상의 괴리가 초래할 수도 있는 경제적 비효율을 사전에 억제한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타기업에 대한 출자는 지배주주가 자신의 실제 투자액에 걸맞지 않게 훨씬 큰 통제권을 획득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이런 괴리를 단일기업의 차원에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주당 1표의 의결권이 부가된 보통주 이외에 배당순위는 보통주와 동일하면서도 1주당 1표 미만의 의결권이 부가된 부분의결권주를 발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1주 1표가 상식인 사회에서는 이런 “장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양자의 괴리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기업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바로 이 과정에 개입하여 상당한 정도의 자기 자본이 수반되지 않는 출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규제에는 비용이 수반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가장 자주 지적되는 이 제도의 문제점은 이 제도가 기업의 생산적 투자까지 제약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제도가 피규제 회사의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해 회사가 투자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경제내에 존재하는 생산적인 투자의 기회가 유실되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자동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이윤동기를 갖춘 다른 기업들이 얼마든지 이런 투자사업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피규제 회사 역시 자기자본을 추가로 조달하여 이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따라서 이 주장은 상당히 과장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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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재 이 제도의 폐지를 간절히 원하는 부류는 자기 돈으로 안정지분을 매입하는 대신, 계열사를 동원한 편법출자를 통해 잠재적인 M&A 압력에 대항해 보려는 일부 재벌사들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경영권 시장으로부터의 시장규율을 계열사를 동원해 무력화시키는 것을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는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