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타이타닉의 침몰

[시평]타이타닉의 침몰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2003.11.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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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타이타닉의 침몰

 마시게 되는 양도 적고 오락성까지 겸비해서 한 때 직장인 뿐 만이 아니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던 폭탄주 제조 방법이 있다. 일명 타이타닉 주. 맥주를 3분의 2가량 채운 컵에 소주잔을 띄운 뒤 사람들이 차례로 소주잔에 소주나 양주를 떨어뜨린다. 소주잔이 적당히 차면 거품을 내면서 가라앉게 되는데 이 조그만 타이타닉 호를 침몰시킨 최후의 한 방울의 임자가 이 폭탄주를 마셔야 한다.

 아주 최근까지 필자는 부실기업이나 쇠퇴산업의 문제에 땜질 식 처방만 하는 경영자, 관료, 정치가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전문가들보다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문제가 미봉책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 파국에 이를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그저 타이타닉 게임을 하는 술꾼의 심정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 조금만 연장시켜 놓고 보자. 재수가 조금만 있다면 타이타닉은 다음 은행장 때, 다음 장관 때 침몰하겠지.”

 더구나 이들은 독특한 방식의 타이타닉 게임을 개발한다. 내 앞에서 소주잔이 침몰할 가능성이 농후하면 게임을 더 오래하기 위해 더 큰 소주잔으로 바꾸어 넣는 것이다. 결국 가라앉고 말 타이타닉은 침몰 할 때 더 큰 거품을 낼 것이고, 누군가 마셔야 할 술은 더욱 독해진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고 한참 뒤에야 침몰이 발생하면, 누가 이 게임을 시작했는지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 지 모두 거품 속에 감춰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십조로 막을 수 있었던 외환위기를 맞았고, 그 뒤치다꺼리에 100조가 훨씬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 국가부채의 상당 부분은 정치가와 국민의 합의 하에 또 미래의 세대로 전가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타이타닉 게임이 카드채에서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더 큰 규모로, 그것도 대통령과 관료와 국회의원과 피해자가 합동으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농업이다.

 지난 10년간 70조가 넘는 자금이 투입되었고, 앞으로 10년간 120조의 자금이 더 농업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자금의 대부분은 농민들에게 거저 주는 돈이 아니라 투융자의 형태로 농민에게 지원되는 돈이다. 그리고 이 돈의 대부분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장기적으로 경쟁성이 없는 분야에 투입될 것이고 이는 부실 금융이 되고, 갚을 수 없는 부채가 될 것이다. 농업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기계화를 더 하고, 경작을 대규모화하고, 엘리트 전업농을 육성한다고 해서 7배나 높은 생산비용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만일 산자부 장관이 섬유와 신발 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100조의 자금을 투입한다고 발표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 투융자 사업이 극적인 성공을 거둔다 해도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엄청난 관세율 하에서 경쟁력을 몇 년 더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다.

 작물의 브랜드화를 이룩하든, 문화, 관광, 가공사업에 농업을 연계시키든 우리가 종국에 유지할 수 있는 농업 인구와 경작지는 현 수준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최선의 농업정책은 이를 처절하게 인정하는 마지노선을 긋고 잉여 농업 인구의 구명보트를 마련하는 일이다. 현실성 없는 투융자 계획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인에게는 연금 형태의, 청장년에는 한시적인 실업보험 형태의 직불 지원금을 대폭 증가시켜야 한다. 돈이 모자라면 농지를 용도 변환해서라도 농민의 탈출을 유도하여야 한다. 여론이 무섭다면 비밀리에라도 이를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총선이 끝나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야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음 정권에 더 큰 덤터기를 씌우는 타이타닉 게임을 계속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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