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취약한 시스템에서 자기역할
모두들 연말을 앞두고 바쁘게 지내는 듯 싶다. 네트워크를 돈독히 하고 우리체제의 취약성을 점검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개별차원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흔들리는 금융시장과 점점 더 어려워지는 취업환경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중산층의 경제기반 잠식은 보다 심각한 차원의 노력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대응은 한계가 있다. 우리 스스로 당장의 안정과 기득권유지를 위해 희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수출로 이어가는 현재의 성장구도가 소비확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금흐름의 선순환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실처리부담과 부채감당능력은 성장세가 확산되어야 가능하지만 이 부문에서의 결정적 역할을 우리 금융부문에서 제대로 해줄 수 있을까?
이제 상황악화를 경쟁력 저하와 남의 탓만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우리 정책형성과정이야 말로 사회적 지배구조의 반영이다. 정책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지배구조의 틀 안에서 걸러지기 때문이다.
가격왜곡과 경쟁제한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소위 우리사회에서 가장 식자층일 수록 진입장벽은 더욱 견고하다. 시장원칙은 계층구분을 위해 일찌감치 존재할 뿐 이후에는 그 구분을 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제도나 부동산 문제도 한번의 검증을 통해 일생이 결정되는 구도하에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세계적 경쟁구도하에서 이러한 문제를 고쳐가려면 시장의 혹독한 검증을 거듭해 거치는 수 밖에 없다.
전반적 소득수준을 높이려면 해외자본이 필요하므로 이러한 측면을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바로 우리의 이러한 구석들이 곳곳에 방치되고 누적된 결과다. 단순한 정책실패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문제가 구조적이며 심각하다.
외부로부터의 경쟁이 심화될 수록 개방되는 부문이 늘어나는 반면 더욱 더 보호되는 부문이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물론이고 당장 시장에 노출되는 과정에서의 조정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변화되어야할 부문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 만큼 변하지 않고 있다. 금융부문의 역할도 심각한 부조화현상에 직면해 있다. 서민금융의 역할은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로 집중되어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태만을 사회적 비용으로 치르고 있다.
효율성과 경쟁추구를 위한 기초여건을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시장에서의 주도적 역할대신 민간의 자발성을 키우는 분위기조성에만 국한해야 한다. 오히려 정부는 요사이같이 민간주체들이 움추러든 상황에서 해외요인의 호전만 기대하기 보다는 적극적 재정역할을 통해 무너지는 중산층을 보호해야 한다.
얼마남지 않은 금융권의 매각작업이나 정부눈치만 보는 민간주체들의 선봉역할에 열중하기 보다는 공공성이 강조되는 금융지배구조의 형성에 정부가 아닌 민간의 역할을 전략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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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회지배구조의 재형성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사회안전망은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 셋째, 원론적인 시장원리만 강조하기에 앞서 시장작동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배구조는 주요 결정과정에서 특정집단의 목소리만 강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고, 사회안전망은 상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갈등요인을 완화하는데 필요하며, 시장원리는 제한된 재원의 중장기적 관리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안돌아 가는 상황에서 자기역할만 충실하겠다는 말은 주인없는 나라를 지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화가 강조될 수록 국가단위의 이익추구는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가 이미 협력없이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심각한 경제전쟁의 와중에 있음을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