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소로스 낙선운동과 한국재벌
총선을 두달여 앞두고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전례없는 비리 스캔들로 정치권의 구속 사태가 잇따르고 여야 각당은 연일 계속되는 폭로, 비방전으로 여념이 없다. 이런 가운데 나온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명단'은 일약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지난 5일 1차로 66명의 공천반대자 명단이 공개된데 이어 10일 2차 낙천 명단이 나온다.
이번 선거는 정치개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각계 각층에서 내는 저마다의 목소리는 '세대 교체'라는 하나의 구호로 응축돼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부자'들의 목소리다. 굳이 찾자면 비리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흘러나오는 "우리는 피해자일 뿐이다.. 기업을 정치의 볼모로 삼지말라"는 게 다다.
정경유착의 원죄를 다 벗지 못한 재벌들에게는 아직 무리한 주문일까. '부자'의 양심을 저버리란 말이 아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개혁에 동참하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밀실 뒷거래로 하던 권력의 '정치 스폰서' 역할 대신 자신의 소신있는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수구 보수'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감없이 대변하는 정견(政見)으로 나타냈으면 한다. 그래야만 정치도 경제만큼 투명한 경쟁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큰손'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의 부시 낙선운동이 화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로스가 부시 대통령의 낙선에 1500만달러(한화 175억원) 이상을 '베팅'한 상태라고 전했다. 부시 캠프에서도 70억달러(8조1700억원) 갑부의 비판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부시 집권 후 드러난 미국의 노골적인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에 반대한다는 그의 정치적 신념 이면에는 세기의 '투기꾼'다운 꿍꿍이가 있을 것이란 추론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본심이 무엇이든 그의 언행은 내용만큼 형식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다음 선거에는 낙천,낙선운동에 수십억대의 자금을 기탁, 정치권을 긴장시키는 큰손의 탄생을 기대해봐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