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헌재식 시장개입의 실체
"시장 시스템이 붕괴될 우려가 있을 때만 정부가 개입한다"
관치 논란이나 과도한 시장개입에 대한 반발이 있을 때마나 정부 당국자들이 내놓는 모범 답안이다. 이처럼 당국자들은 '개입'과 '관치'라는 표현에 알레르기적 거부감을 보인다. '개입'과 '관치'의 당사자인 시장이 보이는 거부감을 뛰어넘을 정도다.
헌데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그 거부감의 강도가 더해서 인지 무조건 "개입은 없다"고 못박은 뒤 말을 잇는다.
지난 25일 은행장과의 간담회. 그는 "도저히 자율적으로 시장안정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이어 "그럴 힘도 수단도 없다. 유일한 건 협조 수준"이라고 했다.
앞뒤가 안맞는 말 같지만 구태여 풀어 보면 개입이란 단어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환율정책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 "(정부는) 들어가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들어가더라도 시장친화적으로 간다"는 식이다.
정부는 '협조'만 구할 뿐이며 이 역시 시장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겠다는 것. 시장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 하지만 속 사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으니 문제다.
시장은 정부가 아무리 협조라고 해도 이를 '개입'으로 이해해 왔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금융시장의 이같은 생리를 잘 알기에 이 부총리는 `협조'란 말을 즐기는 듯 하다. 예컨대 그는 은행장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를 연장해 달라며 `협조'란 단어를 썼다.
그러나 은행장들은 하나같이 부총리의 말을 꼼꼼히 메모했다. 협조가 아닌 강한 지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쯤에서 이 부총리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개입이든 협조든 관치든 단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는 언론에 책잡힐 단어는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뜻이 시장에 전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가 `세련된 관치'에 능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