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두번 죽는 우리의 '이태백'

[기자수첩]두번 죽는 우리의 '이태백'

배성민 기자
2004.03.18 16:46

[기자수첩]두번 죽는 우리의 '이태백'

`이태백', 지난해부터 슬그머니 뜨고(?)있는 유행어 가운데 하나다.

원래 유행어에는 비틀림이 담겨 있기 마련이지만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 말에는 젊은이들의 자기부정과 자조가 짙게 묻어있다.

그런 이태백이 요즘 숫자에 채이고 정치인의 막말에 상처입고 있다. 이른바 두번 죽는 셈.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실업자는 3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20대 실업자는 41만3000명으로 한달새 2만4000명이나 늘었다. 이런 와중에 야당의 어느 유력 정치인은 "요즘 촛불시위에 나오는 젊은이들 모두가 단단한 직장이 있다고 믿지는 못 한다"고 막말을 했다.

촛불시위를 실업자들의 집단 분풀이 쯤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정치감각과 총선을 위해선 어떤 말도 할 수 있다는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업(業)인 정치인이 매케한 연기를 피우며 눈물을 강요하는 꼴이다.

탄핵안으로 국회에서 한바탕 격돌한 정치권은 민생을 살핀다고 나서고 있다. 이른바 투어(tour)다. 경제5단체장을 만났고 주물공장을 방문해 원자재 수급난을 체감했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그러나 현장은 투어의 대상이 아니다. 현장 안에는 얇아지는 봉투에 서러운 근로자들이 있고, 그 밖에는 그런 기회조차 못가진 실업자들이 있다.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도 실업자이자 실직자였다. 평생을 `백수'로 살다 마흔 넘어 벼슬을 얻었으나 3년도 못채우고 `명예퇴직'으로 내몰린 진짜 이태백은 `시절 겹고 쫓겨난 나그네 눈물이 비오듯 옷깃을 적시누나'고 애통해했다.

실업의 고통에도 시선(詩仙) 이태백은 절창을 남길 수 있지만 현실의 `이태백'은 기껏 촛불을 들거나 술잔을 비울뿐이다.

자신이 두번 죽인 우리 시대 이태백도 알고 보면 다름아닌 유권자라는 걸 그 정치인은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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