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벌 해체·분화 관리 잘해야
9·11 여객기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던 날의 뉴스 화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국 패권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 그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필자는 수십 층 높이에서 거꾸로 추락하던 한 남자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 들어 더욱 뒤숭숭한 이라크 정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근의 우리 경제를 보면서 그 남자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물리적 추락은 아니라 할지라도 지난 몇 년간 그와 비슷한 경제적 추락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여기에는 각종 거시지표와 국가경쟁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한국 경제의 심장인 재벌이 분화ㆍ해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재벌의 해체와 분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경제의 재도약을 이룰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핵심변수가 될 것이다.
지나간 개발연대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두 가지 비결은 공생적인 국가-기업 관계와 가족의 결속력으로 똘똘 뭉친 재벌의 경영방식이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정권의 성격이 조금씩 변화하여 이제는 대통령이 "나는 반기업적이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가 되었으니 두 가지 비결 중 하나는 사라진 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재벌의 세대간 계승과 더불어 두 번째 비결도 흔들리고 있다. 이미 일부 재벌은 3세대 경영자가 맡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 재벌도 조만간 3세대로의 이행이 가시화될 시점에 와있다. 아버지가 아들들과 함께 하는 1세대 경영과, 사이가 멀어지면 남보다도 못할 수 있는 사촌형제들이 함께 하는 3세대 경영은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로 인해 가족경영은 3세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여러 나라의 기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97년 이후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각종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악재들은 재벌이 분화와 해체의 길을 재촉하도록 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전에 일찌감치 몇 개의 소그룹을 분화시킨 삼성이 재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한때 재계서열 1위였던 현대는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사망을 기점으로 잘 관리되지 못한 분화를 한 결과 지금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족경영의 전범으로 꼽혔던 LG도 최근 두 집안의 분화를 선언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소그룹 분리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경제적 자원을 가진 상위그룹들이 지속적인 분화를 해나간다면, 그렇지 못한 하위 그룹들은 현상태에서 공고화에 성공하든가 아니면 해체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해체를 하든 분화를 하든, 문제는 연착륙을 위한 세련된 관리이다. 최근의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 보듯이 잘 관리되지 못한 분화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경제적 추락'을 가져온다. 양측의 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기업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선의의 투자자들은 거꾸로 추락해야만 했다.
독자들의 PICK!
SK-소버린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재벌이라고 하는 거대기업집단의 분화 혹은 해체와 더불어 불씨는 곳곳에 숨어있다. 재벌이 이러한 변화를 큰 탈 없이 겪어낼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한다. '친 재벌'이라서가 아니다. 쌍둥이 빌딩 안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있었듯이, 재벌이라는 거대기업 안에도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