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1년만에 백기든 녹십자
“녹십자생명을 헬스케어 전문보험사로 만들겠다.” 지난해 6월말 녹십자생명 조응준 회장이 대신생명 인수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포부로 밝힌 일성이다.
녹십자는 지난해 부실금융기관인 대신생명을 인수해 녹십자생명으로 새출발시켰다. 당시 녹십자는 녹십자생명과 의약산업을 연계시킨 토털 헬스케어서비스를 제공하고 외자유치로 파트너십과 자본력을 확충해 보험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하지만 녹십자는 불과 1년만에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녹십자는 지난 31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에이스생명과 뉴욕생명 등에 녹십자생명 주식을 팔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녹십자생명을 포기하고 더 이상 보험업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셈이다.
녹십자는 녹십자생명을 인수하고 난 뒤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녹십자생명 인수 자금을 후순위채 발행으로 충당하려다 금융당국의 저지를 받기도 했고 외자유치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1년이 넘도록 성과를 내지 못해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녹십자생명 인수 과정과 관련해 컨설팅 비용을 요구하는 법정공방으로 골머리를 앓았고, 지급여력비율 산정을 잘못해 출범 9개월만에 적기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생보업계 종사자들은 제조업에서 성공한 중견기업들이 금융업을 쉽게 보고 덤빈 또 하나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제조업과 달리 보험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품을 팔아야 하고 미래의 자산과 부채를 미리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녹십자는 보험을 제조업처럼 `물건을 만들어 일정 마진을 붙여 판매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이 그룹이나 계열사의 돈줄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오히려 그룹사의 자금이 수없이 들어가야만 제대로 된 금융업을 할 수 있다. 녹십자의 뒤를 이을 새로운 투자자는 녹십자생명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