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9할 타자 공정위
야구에서는 3할 타자와 방어율 2점대 투수라면 최고로 친다. 10번 타석에 나서 기습번트로 뽑아낸 내야안타든, 장쾌한 홈런이든 3번만 누상에 나가면 타자는 목에 힘을 줄 수 있다. 투수도 1경기(9이닝) 동안 2 ~ 3점만 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최고의 투수다.
야구와 행정이 같을 순 없겠지만 스스로 호언장담하는 9할 타자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스스로의 타율(올해 승소율)을 8할8푼5리라고 큰 소리를 쳤다. 심판은 법원이고 상대 투수는 공정위로부터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은 기업이다.
스스로의 성적을 밝히길 꺼리는 공정위가 타율 공개에 나선 사연은 이렇다. 이날 국회 정무위에서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처분에 대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한 비율이 일부 패소를 포함할 경우 ▲2001년 30.0% ▲2002년 47.1% ▲지난해(2003년) 55.6% 등으로 급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곧바로 어필(보도자료 배포)에 나섰다. 기업들의 과징금 일부 승소건은 법원에서 산정기준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니만큼 일률적으로 패소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친절히 설명했다. 지난해 법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일부조항(합의추정조항)의 해석과 관련된 소송이 많았던 것도 있으니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것. 또 일부가 취소됐더라도 최종적으로 과징금이 매겨졌다면 금액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계산법도 꺼냈다. 이래서 나온 결과가 9할 타자론이고 올해는 10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은 이미 여론이라는 잣대로 한 차례 이미지가 훼손된 후다. 이른바 약체투수다. 프로야구 원년 수위타자는 4할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약체투수가 즐비한 특정 팀으로부터 7할대의 타율을 기록해 의미가 훼손됐다. 타율을 과시하기보다 제도·의결과정 등 스스로의 전력정비에 나서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