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포인트]"리레이팅이 시작됐다"

[오늘의 포인트]"리레이팅이 시작됐다"

권성희 기자
2004.09.17 11:19

[오늘의 포인트]"리레이팅이 시작됐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이 있었던 오늘(17일) 종합지수는 약세다. 외국인들의 선물 매도가 프로그램 매물을 유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외국인은 340억원 순매도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매도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순매수다. 기관은 프로그램 중심으로 순매도다. 개인은 소폭 순매도하다 187억원 가량 순매수로 전환했다. 3대 매매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매매를 펼치지 않는 가운데 종합지수는 프로그램이 끌어내리고 있다.

증시가 과열권이라 조정이 예상되는 국면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도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란 점이다. 한 금융기관의 펀드매니저에게 물었다. "주가가 많이 올라왔는데 비중을 줄이실건가요? 늘리실 건가요? 그냥 보유하고 있을 건가요?"

이 펀드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710에서부터 주식을 많이 사와서 더 늘릴 필요는 없다. 지수가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주식을 매도하진 않고 그냥 가지고 갈 생각이다. 조정이 있을 수는 있다고 보지만 중기적으로 좋게 보기 때문에 주식을 축소할 필요를 못 느낀다."

전날 김영일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의 "국내 증시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가치(Value)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을 소개했다. 최근들어 기관 투자가들 사이에서 한국 증시,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 우량주에 대한 재평가(리레이팅)가 이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의견들이 많다.

위에 소개했던 펀드매니저는 리레이팅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증시가 생각보다 강하다 보니 불안하게 보는 의견들이 많은데 낙관적인 견해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해외 주요 투자자들의 '매도'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달러화는 약세 추세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달러화 자산에 대한 헤지를 위해 비달러화 자산에 대한 자산 배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밸류에이션이 싸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우량주에 대한 선호는 계속될 것이며 이는 우량주 리레이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도 계속되는 흐름이기 때문에 우량주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지고 있다.

9월들어 외국인들의 대규모 순매수는 달러화 자산에 대한 헤지라고 생각하면 단순하다. 10월쯤 G10 회담이 열릴 예정인데 이 때 아시아 통화에 대한 통화 절상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이는 달러화 약세로 이어져 외국인 투자자로서는 아시아 주식에 투자할 때 환차익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전기전자(IT) 업황이 좋지 않고 내수도 침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 브릭스 등 전세계 경제가 동반 호황을 누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펀더멘털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비달러화 자산에 대한 국제 자금 이동이 재강화될 수 있으며 이는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량주에 대한 수요로 이어져 우량주 리레이팅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금융기관의 주식운용팀장는 가치주에 대한 리레이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에스원 주가를 본 적이 있는가.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현대차 주가도 사상최고가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을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이 삼성전자로 가 있지만 내수 관련주들의 움직임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가치주에 대한 리레이팅 신호라고 생각한다. 현대모비스나 풀무원도 최근 가파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앞으로 먼저 오른 이런 가치주와 비슷한 펀더멘털을 가진 저평가주들도 함께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9월말 10월초엔 조정이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전인대회가 끝나면 위안화 절상이나 금리 인상 논의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시장은 다시 중국 경기 경착륙과 대중국 수출 둔화 등을 우려하면서 흔들릴 것이다. 이 때의 주가 하락, 이 때의 조정이 가치 있는 한국의 우량주를 매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두 금융기관의 펀드매니저가 갖고 있는 생각은 비슷하다. 종합지수를 바라보지 않고 개별 종목을 바라볼 때 우량주에 대한 리레이팅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올해 증시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이들과 달리 향후 수개월간은 증시가 박스권 등락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한 투신사 주식운용팀장도 리레이팅이란 점에서는 이들과 의견을 같이 했다.

이 팀장은 "세계 경기 사이클이 꺾일 때 증시가 추세적 상승세를 보인 적은 없기 때문에 수개월간 증시는 800~870 박스권 등락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그러나 800 밑으로 떨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긍정적인 구조적 변화가 증시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 팀장은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인 것이 국내 기업들의 전형적인 구조적 변화를 상징한다"며 "기업 실적이 좋아 현금은 넘쳐나는데 이제 어떤 기업도 이 돈을 방만하게 쓸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아울러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더불어 국내 증시의 유동성 변화(자사주 매입, 개선된 수급 구조 등)와 향후 10년간 인구구성상 소비 및 생산주체 비중이 두텁다는 점 등도 국내 증시의 전망을 밝게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또 "수개월간 지수 자체는 박스권 등락을 계속한다 해도 개별 종목이 크게 움직이면서 시장 내부적으로는 매우 역동적일 것으로 본다"며 "종목별 수익률 격차가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주식이 없는 투자자라면 조정 때마다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식이 충분한 투자자라면 팔지말고 보유한채 기다리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기관 투자자 중에도 조정 때 사려는 대기 매수 세력이 많다"고 전했다.

국내 증시의 리레이팅 스토리는 일이년 된 얘기가 아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너무나 오래 속아왔기 때문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종합주가지수의 저점, 글로벌 경기 사이클 하락 속에서도 일부 종목들의 신고가 경신 등은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종합지수를 보지 말고 알게 모르게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시장 내부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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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희 기자

안녕하세요. 국제부 권성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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