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전쟁하는 순간 망한다"
"전쟁을 벌이는 순간 망한다. 신용카드 전쟁해서 망했고, 가계대출 전쟁해서 또 망했고, 중소기업 전쟁하다가 위험한 상황 아닌가."
한국씨티은행 하영구 행장의 말입니다. 하 행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은행장들이 모두 전쟁을 선언하고 있는데 대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하 행장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은행들의 전쟁에 불을 붙인 장본인은 하 행장입니다. 국내 은행들이 전투 태세에 돌입한 것은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직후부터였기 때문입니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전쟁하지 않겠다는데 다른 은행장들은 전쟁을 하겠다고 야단인 셈입니다. '나 싸우기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한 남자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맴을 도는 우스운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전쟁은 적 뿐만 아니라 나까지 폐허로 만듭니다. 그래서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들 합니다. 또 그래서 전쟁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행들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벌써부터 국지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금금리에 인색하던 은행들이 연리 4%가 넘는 예금을 봇물처럼 쏟아낸 것입니다.
한 은행이 고금리 상품을 내놓으면 다른 은행들은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객들, 그것도 거액자산가들이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음에 상품을 내놓는 은행은 앞의 은행보다 조금더 높은 금리를 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안 그러면 떠나간 고객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똑같은 금리라면 굳이 발품을 팔 고객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때부터 출혈이 시작됩니다. 현재 팔고 있는 특판예금까지 다 합치면 은행들이 이렇게 모은 자금은 10조원 가까이 됩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금운용할 곳이 없다고 걱정하던 은행들이 이 막대한 자금을 도대체 어디에 운용해서 이익을 낼지 의문스럽습니다. 얼마전 4%대의 특판예금을 판매했던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예금을 받는 순간 역마진인데 미친 짓이었다"고 후회하더군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시장 참여자들간에 극심한 생존경쟁이 벌이지는 것은 시장경제의 당연한 순리입니다. 그리고 경쟁의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시적인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가장 무식한 방법이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가격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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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씩 장사를 해온 은행들이 다 이유가 있고 대안이 있어서 벌이는 특판경쟁이겠지만 자신까지 폐허로 만드는 전쟁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