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국제표준이 생기는 이치
지난 2월초 뉴욕에서 열린 리스크관리전문가협회(GARP) 총회 및 세미나는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강연을 듣고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열기가 느껴지는 모임이었다.
역시 최고의 화제는 바젤II로 불리우는 신바젤협약의 내용과 파급효과에 관한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리스크관리의 핵심은 자기자본관리이다.
자기자본 확보는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비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를 쌓는 행위이다. 은행 도산이 주로 예상치 못했던 손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때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까지 마련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자기자본을 많이 쌓을수록 안전해지기는 하지만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된다. 반대로 과소자본이 되면 예상치 못한 손실이 날 경우 도산해 버린다. 1995년 베어링 은행의 파산이 좋은 선례를 남긴 바 있다.
자기자본적립이 필요한 주된 리스크관리 대상은 시장리스크 신용리스크 운영리스크로 구분이 되고 이중에서 바젤II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신용리스크와 운영리스크이다.
신용리스크의 경우 그동안 OECD국가냐 아니냐의 간략한 분류를 토대로 필요자기자본을 추출하던 것을 이제는 해당 주체별로 파산확률, 파산시회수율, 그리고 파산시 손실액수를 세분화시켜서 산정한 후 필요자기자본을 산출하게 된다. 운영리스크에 대비한 자기자본 산출기법은 바젤II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이 역시 운영리스크의 측정과 필요 자기자본 확보가 관건이다.
르팬 바젤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조연설에서 신바젤협약에 대해 당혹해하는 금융기관들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에 비유하였다. 앨리스가 엉겹결에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비유로 들며 정해진 룰을 잘 따라오면 이상한 나라에서의 경험이 앨리스를 성숙시킨 것처럼 금융기관들의 수준을 더한층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한마디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따라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묘한 뉘앙스가 풍기는 연설이었다. 국제결제은행 이사를 역임한 앤드류 크로켓 JP 모간 사장은 한술 더 떠서 바젤 II가 도입되고 정착되고 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그 이후는 다시 바젤 III가 도입될 것이라는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그야말로 바젤 II 협약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바젤III가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제적 표준은 이렇게 정해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표준을 준수하기 위해 컨설팅이다 시스템 도입이다 하며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금광을 찾아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벌지 못했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청바지를 판매한 회사만이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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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새로운 리스크관리 표준의 제정과 도입이 금융기관의 안전성을 보다 증대시키기는 하겠지만 강화된 리스크 관리 자체가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것과는 일단 거리가 있다고 보면 결국 이러한 기회를 통해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컨설팅 회사와 IT회사인 것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금융 회계 법률 등을 망라한 지식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바 있다. 이제 이러한 원칙이 구체적인 방침과 전략으로 연결되어야 할 때이다.
비록 우리가 주도적으로 국제적 표준을 정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표준이 계속해서 제정될 때마다 이를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로 재빨리 구현함으로써 금융기관과 상생의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는 실력 있는 국내 지식서비스 기업들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금융 분야의 지식인프라를 담당할 기업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육성 및 지원책이 시급히 제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