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정치의 균형, 경제의 균형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참여정부의 원래 국정비전은 한국을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희가 중심이면 우리는 무어냐"라는 중국과 일본측의 반발이 있자 슬그머니 물류중심이니 금융허브니 하는 식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마저도 목표인지가 불분명하다. 상황에 따라 국정의 중심목표가 자꾸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북아의 중심`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가진 화두는 `균형`인 듯 하다. 행정수도 이전을 계기로 `지방분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말에서 시작된 `균형론`은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고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언론매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우리가 균형자 노릇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해 미국측 시선이 곱지 않자 정부측 인사들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균형자"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우리 상식으로 동맹이라고 하는 것은 남들보다 두 나라가 더 굳게 결속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약속을 해놓고 동북아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사로 나서겠다"며 동맹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에는 자주외교, 자주국방도 인기있는 품목 중 하나다. 강대국의 눈치만 보다가 이제 대등한 입장에서 말하겠다는 것은 듣기에도 속 시원하고 세계 10위권 경제국가의 위상에도 맞다. 그래서 "미국에 대해 할말은 하겠다"든지 "사안에 따라 북한에 대해서도 얼굴을 붉히겠다"는 말은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이해찬 총리가 북측의 김영남 위원장을 만났을 때는 전혀 얼굴을 붉히지 않아 이상했다. 지금 남북간에는 북핵문제나 6자회담을 둘러싸고 얼굴 붉힐 일이 많다. 그런데 이총리는 나이로 훨씬 연배인 김위원장을 선배 대하듯 해서 "저런 자세로 정말 얼굴을 붉힐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지방자치단체중 도(道)를 없애고 광역시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런 논의가 현실화될 경우 지방분권이나 지방의 균형적 발전 등 개념에는 상당한 혼란이 올 것 같다. 지방이 낙후돼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긴다는건 설득력이 있지만 충청도가 없어진 후 연기나 공주로 옮긴다면 "왜 거기냐"하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로스쿨의 경우도 각 도에 하나씩 두겠다는데 앞으로 도가 없어지면 기준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정부의 지방정책 담당자는 "지방정부에 분권을 해주어도 행정기관이나 공기업 등을 지방으로 분산해 주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무언가 부지런히 옮겨 주어야 인구도 분산되고 경제력도 분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가 없어진다면 지방의 개념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과거에는 예컨대 경상도와 전라도의 균형을 잡아주면 큰 불만은 없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 호남고속도로도 만들면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광역시 간의 경쟁이 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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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론은 이제 경제문제에서도 활발하다. 외국계 펀드의 투자수익을 놓고 금융당국이 내외국인의 차별대우를 시정해 균형을 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금감위의 이런 정책방향은 물론 옳다. 그러나 때로는 차별대우가 균형인 경우도 있다. 노동시장의 경우가 그렇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에 명문화하라는 것은 균형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청와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두가 정치, 경제를 압도하다 보니 경기동향은 이제 관심에서 멀어진듯 하다. 그래서 경제부총리가 "단기지표의 움직임에 신경쓰지 않겠다"고 말해도 시장은 조용하다. 하지만 경제부총리란 단기지표와 장기지표를 함께 고려하면서 정책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중시하는 균형을 부총리가 무시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