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부끄러운 한국의 재벌家들

[시평]부끄러운 한국의 재벌家들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5.07.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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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부끄러운 한국의 재벌家들

지난 한달은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신 없는 한달이었다.

먼저 지난달 29일 삼성생명이 공정거래법상 계열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달 16일에는 소버린자산운용이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SK㈜ 지분을 전량 매각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21일에는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를 통해 삼성그룹이 97년 대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같은 날 두산그룹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오너 형제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부당내부거래,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을 받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사태들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모두 우리 나라 재벌가들의 지나친 그룹 지배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삼성의 헌법소원부터 살펴보자.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금융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제한의 근거는 간단 명료하다. 의결권 행사를 고객의 이익이 아닌 총수의 이익을 위해 항상 행사할 것이고,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을 경우 금융보험사를 이윤 추구 기관이 아니라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표면적 이유는 재산권 침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총수일가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외부 주주들에게 그 어떠한 견제도 받고 싶지 않아서인 듯하다. 공정거래법이 위헌 판정을 받지 않고 계속 시행되면 2009년 2월 주주총회부터 삼성전자에 대한 그룹 전체의 의결권이 17.7%에서 15%로 축소된다.

의결권이 불과 2.7%포인트 축소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을 통해 굳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는 주주총회에서 벌어지는 위임장 대결에서 총수 일가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불리해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위임장 대결에 대한 적대감을 극명히 보여준 또다른 사례는 바로 SK㈜ 지분 취득 후 그룹 총수와 위임장 대결을 벌인 소버린자산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임장 대결이 촉발제가 되어 SK㈜는 지배구조가 개선되었고, 주가가 상승해 기업가치도 크게 제고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소버린을 비난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주주 전체의 이익보다 총수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를 통해 드러난 삼성그룹의 불법정치자금 제공도 총수 일가의 지배욕구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하겠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면 97년 대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의 제공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부패정치인들의 강압에 못이겨 마지못해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기보다 오히려 대가를 바라고 주도적으로 제공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두산그룹 사태는 부당내부거래, 비자금 조성 등의 진위를 떠나서 한국 재벌의 세습경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학생을 제외한 4세대 10명 전원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그룹에 과연 유능한 인재들이 얼마나 모여들지 의심스럽다. 1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기업의 세계에서 과연 두산그룹이 경쟁력을 유지 또는 향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룹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면서까지 세습경영을 택한 것도 결국 뿌리 깊은 그룹 지배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나라 재벌들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왜곡된 형태로 이해하고 있는 것같다. 총수 일가의 이익에 합치되면 그것이 곧 시장경제요 자본주의지만, 그들의 이익에 반하면 곧 반시장경제고 반자본주의가 되는 것이다. 기업 또는 기업집단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나머지 대다수 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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