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기로 수협 회생..'따뜻한 카리스마'

생사기로 수협 회생..'따뜻한 카리스마'

진상현 기자
2005.08.26 12:14

[머투초대석]장병구 수협은행장

 

장병구 수협은행장은 주요 시중은행장 인사 때면 빠지지 않고 하마평에 오르내릴 만큼 금융권에서는 알아주는 실력파다. 2002년에는 이강원 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과 함께 외환은행장 최종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 있었던 우리금융 회장, 국민은행장 인사에서도 최종단계까지 경합을 벌였다.

이런 시중의 평가는 외환은행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한 뒤 수협은행장직을 맡아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던 수협은행을 회생시킨 그의 경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장 행장은 충북 단양 산골 농부의 아들(4남2녀 중 3남)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 고학을 하다시피했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외환은행에 들어갔다. 30여년을 `외환은행맨'으로 보내면서 뉴욕지점 차장, 종합기획부장 등 요직을 거쳐 2000년 3월 부행장직에 올랐다. 그리고 그해 11월 수협은행장직을 맡아 수협은행과 인연을 맺는다.

장 행장 취임 당시 수협은행은 IMF 외환위기 과정에서 1조원에 달하는 자본잠식 등으로 인해 부실금융기관으로 판정돼 퇴출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장 대표의 노력으로 공적자금을 받은 후 2001년 275억원이라는 수협은행 창립 이래 최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550억원, 2003년 711억원, 2004년 1042억원 4년 연속 최대 순익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694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이런 변신은 취임 후 각계에 수산전문 특화은행으로서의 수협은행의 생존 필요성을 설명하고 내부적으로는 침체된 조직분위기 쇄신에 나선 장 행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장 행장은 취임 직후에는 약 40%에 해당하는 인원 감축과 점포 폐쇄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장 행장은 `따뜻한 카리스마'로 불린다. 따뜻하게 직원들을 대하면서도 결단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 때문이다. 직원들과의 소주 한잔을 즐길 정도로 서민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약력 △1946년 충북 단양 △경기고 졸 △서울대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졸 △외환은행 입행(69년) △종합기획부장(98년)△상무이사(99년)△부행장(2000년 3월) △현 수협은행장(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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