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10만원권 발행의 필요성

[시평]10만원권 발행의 필요성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2005.10.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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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상 특히 거시경제를 분석함에 있어 가장 오류를 적게 범하기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가정 가운데 하나가 경제 주체들의 합리성이다. 경제주체들의 합리성을 인정하고 나면 많은 경제 문제들이 보다 쉽게 이해되고 그 해답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때로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의 합리성을 의심하는 듯한 언사를 하는 것을 본다. 특히 정치인과 관료들 가운데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대통령의 홍보수석이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국민의 다수가 흰 학을 검은 학이라고 한다 하여 흰 학이 검은 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러나 국민의 대다수가 합리적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런 말은 할 수가 없다. 합리적인 대다수의 국민은 흰 학을 희다고 하고 검은 학은 검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홍보수석의 말은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플레이션·부정부패 우려?

우리 국민의 합리성을 가장 무시하는 집단 가운데 하나가 경제관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경제 원리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면서 어떤 이유에서 인지 때로는 경제원리를 가장 철저하게 무시하는 집단이 이들이다.

1997년 말에 외환위기 이후 한 토론회에서 어떤 관료가 학자들에게 외환위기의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의 일단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괴상한 부류의 사람이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영향력이 없는 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평자의 경험으로는 관료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학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와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10만원 권 지폐의 발행을 한국은행이 공론화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평자의 생각으로는 10만원 권을 발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경제당국의 엄청난 직무유기이며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의 합리성과 경제적인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얼마 전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관료들은 10만원 권을 발행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부정부패가 증가하거나 쉬워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10만원 권의 발행에 반대하고 있다. 10만원 권의 발행에 반대하는 근거인 이들 이유는 경제주체의 합리성과 화폐의 기능에 대한 도저한 몰이해에 속한다.

한 사람이 10만원 권 수표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보자. 그런데 그 10만원 권 수표를 10만원 권 지폐로 바꾸어 준다고 하면 이 사람이 전과 다르게 돈을 함부로 뿌리고 다닐까? 결국 10만원 권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표를 지폐로 교환하여 주면 우리 국민들의 지출성향이 이와 같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인데 이 보다 무식한 경제이론을 평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경제관료들은 그와 같이 행동하는지 모르나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그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다.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가족의 생계와 자식교육을 책임지고 나날이 증가하는 국가의 재정을 위해 적지 않은 세금을 부담하여야 하기 때문에 수표에서 지폐로 변하는 것과 같이 화폐의 디자인이나 색갈이 변하였다고 하여 지출을 더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한다.

경제관료들의 탁상공론 불과

부정부패가 쉬워지거나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10만원 권의 발행에 반대한다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 먼저 부정부패를 다스리는 것은 경제관료들이 염려할 사항이 아니다. 경제관료들은 경제나 잘 챙기면 되고 자기들의 영역 밖의 문제로 스스로의 의사결정을 그르치지 말도록 당부하고 싶다.

부정부패는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지 경제부처가 할 일이 아니다. 화폐의 단위가 커져서 부정부패가 증가한다면 수사기관은 당연히 수사기법을 개선하여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경제부처가 염려할 사항이 아니다. 시쳇말로 너나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부류가 누구인가? 일반 국민 가운데 몇 명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가? 일부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를 관리하기 위하여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수표를 발행 받아야 하고 수표를 사용할 때는 주민등록증 주섬주섬 꺼내서 이서하여야 하는 불편을 언제까지 감수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결국은 부정부패의 비용을 부정부패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데 이는 것은 가벼운 사안인가? 정책당국은 화폐와 관련한 의사결정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유념하여야 한다.

화폐는 거래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너무나 원론적인 이론까지 무시하면서 이 나라의 경제관료들이 우리 경제를 얼마나 잘 다스리고 있는지 참으로 염려스럽다. 경제와 거래의 규모로 볼 때 만시지탄이 크나 10만원 권의 발행을 서두를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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