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외환은행 M&A로 뜨겁습니다. 하지만 M&A 과정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당사자들간의 비밀유지계약을 전제로 협상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경쟁 상대들을 의식한 정보 보안 필요성도 크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M&A가 종결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당시의 상황을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얼마전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매각 과정에 정통한 한 금융권 인사를 만났을 때입니다.
이 인사는 대화 도중 제일은행 인수전 얘기가 나오자, "HSBC가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은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제일은행 인수 협상 과정에서 사모펀드(PEF)에 질렸기 때문일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진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당초 HSBC의 제일은행 인수는 가계약을 체결하는 수준까지 가는 등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고 합니다. 인수가격도 약 29억달러선에서 접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스탠더드차타드(SCB)가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뉴브리지는 일단 우선협상 자격이 있던 HSBC에 다시한번 기회를 줬고 HSBC는 할 수 없이 인수가격을 31억1000만달러 선까지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협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SCB가 다시 31억5000만달러 가량을 인수가액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뉴브리지는 HSBC에 가격을 올릴 의향이 있는지 재차 물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HSBC 본사 경영진은 노발대발하며 당장 인수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를 했다는 겁니다.
이 인사는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수익률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평판이나 이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법적으로 하자만 없다면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매각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당시 HSBC가 31억5000만달러의 가격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끝이라는 보장이 없었다"며 "HSBC가 외환은행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은 데는 또다시 (론스타라는) 사모펀드를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HBSC의 제일은행 인수 실패담을 들으면서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국민은행과 하나금융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뉴브리지 못지 않게 론스타도 가격을 올리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론스타도 뉴브리지가 HSBC와 SCB라는 두 인수후보의 가격 경쟁을 통해 매각 가격 극대화를 실현한 '경매호가식 입찰(Progressive Deal)'을 택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금융기관도 두손을 든 사모펀드와의 인수협상. 두 국내 금융기관들이 냉철하고 현명한 레이스를 펼칠 수 있을지, 솔직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