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이칸과 자본의 성격

[기자수첩] 아이칸과 자본의 성격

이상배 기자
2006.03.10 09:18

"나는 종이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돈을 벌고 싶을 뿐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칼 아이칸이 1980년 제지회사 해머밀의 앨버트 듀발 사장을 만나서 한 말이다. 당시 아이칸은 해머밀을 공격, 소원대로 1년여 만에 900만달러의 차익을 챙겼다.

30년 넘게 미국 기업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아이칸이 이번에 한국 토종기업KT&G'사냥'에 나섰다. 그가 해머밀의 듀발 사장에게 던진 말은 투자기업의 장기성장에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상어'로 불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프랭클린뮤추얼을 비롯해 외국인투자자들이 아이칸 편에 서고 있다. 그 배경은 간단하다. 명분은 주주이익, 실제는 수익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는 "외국인투자자가 바라는 것은 주가가 오르는 것뿐"이라며 "아이칸측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가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칸이 이처럼 거부하기 힘든 논리로 세를 규합하는 사이 KT&G 경영권 방어 진영은 '애국주의'라는 다소 순진한 논리를 앞세우는 것같다. 일례로 KT&G 관계자는 "올 3.1절을 맞아 부활한 담배 '아리랑'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토종자본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접근은 도움이 안된다. 대형 투신사의 부사장은 "애국심으로만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애국주의'는 오히려 외국인투자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

'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자본의 성격'에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아이칸이 요구한 '단기적인 주주이익 환원'이 최선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KT&G 경영진의 노력도 중요하다. SK㈜가 소버린자산운용과의 분쟁에서 승리한 데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자구노력이 큰 역할을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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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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