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KT&G와 자산운용사의 속내

[기자수첩]KT&G와 자산운용사의 속내

박영암 기자
2006.03.15 08:28

"박 기자, 우리도 '왕따' 안 당하고 먹고 살아야지."

30개 자산운용사들이 한결같이 KT&G의 현 경영진을 지지한 이유를 묻자 수탁고 4조원대의 자산운용사 대표는 "아이칸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KT&G 현경영진에 반대할 경우 향후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다"고 솔직히 밝혔다.

펀드투자자 입장에선 KT&G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아이칸측의 주장이 수익률 제고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산운용업체 입장에선 당장 불이익을 우려해 KT&G 지지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비단 자기회사 뿐만 아니라 지지의사를 밝힌 30개 자산운용사 모두가 처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마이너의 비애를 인정한 그의 발언은 일긍 수긍이 간다. MMF와 채권형 펀드자금을 대기업과 은행 보험 등에서 유치하고 있어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영진 지지를 바라는 이들의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관계 리스크(Relationship Risk)가 상당했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자산운용사는 지주회사의 '백기사' 역할을 뒷받침하듯 너무 나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KT&G의 향후 성장가치는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치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현경영진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5만5500원인 적정주가 시장컨센서스조차 부인하고 있다. 동업자를 하루아침에 '바보'로 만들었다.

KT&G는 자산운용업계의 합리적인 '의결권 행사기준'에 대해 고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 투표(Shadow voting)'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원칙의 수립이 필요할 때다.

자산운용업계는 그동안 경영권 확보가 아닌 배당과 자본이득을 겨냥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이기 때문에 임원선임 등 주총 안건에 대해서는 가급적 현 경영진을 지지해 왔다. 투자기업들이 자산운용업계를 '물'로 안 것도 이같은 관행에 기인했다.

이제 과거 관행과 단절선언을 검토할 때다. 이것은 과거보다 힘이 커진 자산운용업계가 '선관주의'(Fiduciary Duty)에 충실하는 길이기도 하다. 국내 자산운용업체들이 지난해말 5%이상 지분을 소유한 업체는 모두 327개. 유가증권시장 180개와 코스닥시장 147개업사다. 한두개 자산운용업체가 주식을 모으면 경영진 교체는 물론 신규사업계획에도 제동을 걸 정도다.

그런 만큼 자산운용업계는 강화된 발언권을 '펀드투자자'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 그것만이 외부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산운용업계가 성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펀드투자자의 이익에 충실할 때 주주이익을 등한시하는 경영진을 과감히 교체하는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을 더이상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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