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계에 때아닌 `히딩크 논쟁'이 한창이다. 연임여부를 놓고 교수들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바로 논쟁의 주인공이다.
러플린 총장은 지난 2004년 7월 KAIST를 세계적인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서 모셔온 인물이다. 당시 과학계에서는 이공계 위기를 타파할 구원투수, 과학계의 히딩크 등으로 그를 부르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히딩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본브레레였다'느니 하는 말들이 KAIST 교수들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러플린 총장의 연임은 KAIST 교수 80% 이상이 반대서명을 한 상태다. 학과장 20명은 그가 연임된다면 보직을 사퇴키로 했다.
이에 대해 러플린 총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명권자인 정부(과학기술부)의 뜻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문책하면 모를까 교수들이 반대한다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그러나 과기부는 28일 열리는 KAIST 이사회에 모든 걸 맡긴다며 가급적 러플린의 연임에 대해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이다. 과기부는 이사회의 판단에 영향을 줄 업적검토 소위원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발을 뺐다. 영입할때는 고위간부를 미국에 파견하는 등 '삼고초려'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면서 막상 문제가 되자 '나 몰라라' 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셈이다.
흔히들 히딩크의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얘기할 때 그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과 시간을 얘기한다. 실제 히딩크는 월드컵 개막을 몇달 남겨두지 않은 평가전에서도 5:0으로 대패,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러플린과 KAIST 교수들간의 갈등은 부임 6개월째인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다. 벌써 1년 이상 내부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러플린에 대한 전폭적 신뢰도 주지않고, 그렇다고 과감한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젠 2002년의 축구협회를 벤치마킹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