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행동법칙]창의성을 위해선 생활의 작은 변화가 필요해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수적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보수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정치적 의미에서의 보수성이 아니라, 과거의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보수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람들 또한 그 진보적 성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왜 인간은 그렇게 보수적인 것일까. 내 생각에는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수천년을 거쳐 습관화된 생각과 행동은 이미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살아남아 보존된 것이기 때문에 위기로 가득찬 생활 환경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수천년을 거쳐 인간의 두뇌에 자리잡아 습관화된 생각의 대표적인 경우가 속담이다. 속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가기도 하지만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사에 보탬이 된다.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우리의 삶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와 같은 속담은 현대인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고방식이다.
속담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의 보수성은 학문적으로 검증되기도 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바로 그것이다. 경로의존성이란 우연에 의해 하나의 길(경로)이 정해지면 다른 길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걸 뜻한다. 이를 '고착효과(Lock-in effect)'라고도 한다.
경로의존성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오랜 옛날 모피 상인이 숲을 지나 시장에 가야 했는데, 지나야 할 숲 가운데 늑대 소굴이 있어 그곳을 피해 우회하여 갔다. 상인이 간 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이 되었는데 숲을 우회했기 때문에 그 길의 모양은 곡선이 되었다.
길은 조금씩 넓어지고 다져져서 모피 상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게 되었다. 길 주변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가게와 대장간도 생겨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단지도 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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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숲 속이 번잡해지자 늑대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늑대가 사라졌으니 굽은 길을 따라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굽은 길은 계속 그대로 남아 이용되었다. 사람들은 곡선 거리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영주가 길이 굽어 있기 때문에 여행에 불필요하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해서 길을 직선으로 새로 내려고 했다. 그러자 온갖 민원과 반대가 쇄도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자동차가 발명되었다. 자동차는 곡선 도로의 주행에 필요한 복잡한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연구가 진행되었고 성능 개선도 이루어졌다. 또 다시 세월이 흘러 숲마저 없어지고 그곳은 완벽한 도시가 되었다. 숲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왜 도시의 길이 휘어져 있는지 가끔 이상하게 여기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번 고착된 상황이 얼마나 바꾸기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굽어진 길은 수차례 쓸모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경로의존성에 대한 실제 예를 들어보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영문 자판 배열이 그렇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영문 자판은 왼쪽 위의 알파벳 순서가 'QWERTY'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수동식 타자기를 위한 자판 배열로 현재와 같은 컴퓨터 타자용으로 매우 비능률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이유 때문에, 더 나은 알파벳 배열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계속 통용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자면 VCR 개발방식을 놓고 소니와 마쓰시다가 벌였던 시장쟁탈전을 들 수 있다. 70년대 후반 일본 가전제품의 대명사였던 소니와 마쓰시다는 VCR 개발방식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였다.
소니는 베타방식이었고 마쓰시다는 VHS 방식이었다. 이때 마쓰시다는 소니에 공동개발을 제안했지만 기술적 우위를 자신했던 소니는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니의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마쓰시다에 돌아갔다.
마쓰시다가 히타치와 미국의 RCA 등을 자기 편으로 합류시키고 시장을 먼저 점령해버린 것이다. 기술적 차이를 알기 힘든 소비자들로서는 먼저 사용하게 된 마쓰시다의 제품에 호의를 가지게 되었고, 뒤늦게 소니는 소비자들에게 기술적 우위를 선전했지만 소비자들의 가진 습관의 벽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요즘처럼 창의력 혹은 창조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한 보수성 또는 경로의존성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다시 말해 보수성과 경로의존성은 대단히 깨뜨리기 힘들다는 것때문에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개인 또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그렇다고 창의성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창의적이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옛것과 결별하는 것이고, 창의성이란 새로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생존 수단이다.
변화한 환경에 대해 예전의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필연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보수성과 경로의존성은 창의성에 강력한 힘으로 대항하고 저항한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보수성과 창의성은 싸움은 보수성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승리는 좋은 의미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도태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것이나 자신에게 새로운 것이라면 무작위적으로 접해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앞서 얘기했듯 보수성이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인간 삶에 많은 보탬이 된다는 점이다.
세상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급격하지 않으며 작은 부분에서 하나씩 이루어진다. 때문에 변화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보수적 인식으로 대응하고, 새로이 변화된 부분들에 대해서만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작은 변화조차도 인간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경영자들이 젊은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을 배워보기도 하고, DDR 위에서 춤을 춰보기도 한다는데, 그런 것도 좋지만 좀더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계획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가장 좋은 것이 독서와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새로운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주는 책들이 발간됐을 때 놓치지 않고 읽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어떤 주제에 대한 책이 나왔는지 알아 두었다가 나중에라도 읽어야 한다.
또 새로운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새롭게 맺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거북스러워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것만큼 신속하고도 확실하고도 새로운 교육은 없다. 새로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이 훨씬 좋은 교육이 될 수도 있다.
또 새롭고 거창한 체험을 하는 것보다는 일상적인 사소한 습관을 바꿔보는 것도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회사에 출퇴근하는 경로를 달리해 본다면 자신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거리 문화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직원들끼리 회식이 있을 때, 계속해서 모였던 음식점이 아닌 다른 음식점을 택한다면 또 다른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다. 그 작은 변화가 당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나 우연치 않은 기회에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도서출판 토네이도 이부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