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불신이 이랜드파국 불렀다

노사불신이 이랜드파국 불렀다

홍기삼 기자
2007.07.20 10:25

사측 양보안 내놓고도 노조 마음 얻지못해

20일 결국 공권력 투입이라는 최악의 파국으로 막을 내린 이랜드사태는 노조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달라는 요구에서 출발했지만, 갈등을 증폭시킨 핵심 요인은 다름아닌 노사간 불신에 있었다는 지적이다.

노사가 점거농성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 10일부터 19일 오전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대표자 교섭을 가졌지만, 협상과 대화가 번번이 겉돈 배경에는 심각한 수준의 상호 불신이 깔려있었다.

지난 16일 밤샘협상에서 핵심 쟁점이 됐던 홈에버의 ‘18개월 이상 근무자에 대한 고용보장’안의 경우 사측은 전향적인 안이라고 내놨지만, 노조 측은 이미 까르푸 매각당시 단체협약 체결에 들어있던 내용이라며 맞받아쳐 더 이상 협상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이처럼 같은 사안을 놓고도 노사간의 입장차는 극명히 엇갈렸다.

◇양보안 내놓고도 노조 설득못한 이유는=회사가 1년 유예기간을 두고 뉴코아의 외주화를 철회하겠다고 전격 제안했지만, 노조는 회사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실제로 1년 뒤에 사측이 외주화를 철회할 것인지 노조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결국 양보안을 내놓고도 사측은 노조 측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덕분에 노조 측도 사측의 전향적인 협상안을 끌어안지 못한 채 제 발길로 차버린 꼴이 됐다. 불신의 늪은 그만큼 노사간을 깊게, 또 멀리 갈라놓았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화와 협상이 제대로 진행됐을 리 만무하다. 노사간의 대화와 협상은 번번이 핵심을 비껴가 허공을 맴돌았다. 심지어 노사는 17일 무려 10시간이 넘는 밤샘협상을 하고도 결론이 제대로 나질 않자, 이제는 언제 다시 협상을 할 것인지를 두고 1시간 넘게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노사간에 쌓여있던 극명한 불신이 협상타결에 가장 큰 장애가 됐다는 안타까움을, 협상 중재자로 나섰던 노동부 관계자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토로할 정도였다.

노사간 의사소통에 근본적인 장애물인 불신을 조성한 책임은 사측에 좀더 기울어져 있다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노동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잦은 M&A가 화 불렀나=이랜드그룹이 잦은 인수합병(M&A)으로 기업의 몸집을 키우기에만 급급했을 뿐, 이종 기업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화시키는 리더십과 지도력 부재가 이번 사태를 키우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랜드일반노조 김경욱위원장이 지난 10일 개최된 노사 대표급 협상에서 홈에버 오상흔대표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분석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김위원장은 이랜드에 인수되기 전에도 한국까르푸 노동조합의 위원장이었다. 까르푸가 이랜드에 인수된 건 이미 지난해 4월28일의 일이다.

지난해신세계(337,000원 ▲4,500 +1.35%)가 월마트코리아를 전격 인수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구학서사장은 서울 잠실에 위치한 월마트코리아 본사를 직접 찾아 임직원 간담회를 통해 “월마트 직원 100% 고용 승계 원칙은 변함없다”며 “근로 조건이나 처우가 개선되면 개선됐지 악화되거나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갑자기 피인수 기업의 직원으로 전락한 월마트코리아 직원들의 닫혀진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삼성그룹계열사였던 삼성플라자를 인수한 애경백화점의 오너 사장도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삼성플라자 직원들을 ‘우수한 인재’라고 추켜세우며 다독거렸을 정도다.

물론 사측의 타협안에 손을 내밀지 못하고 경직된 명분에 집착하다 결국 강제해산이라는 운명에 내맡겨진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도 파국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 이전에 사측 대표가 직접 나서서 노조 간부의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꽤 길게 남을 것 같다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만약 그랬다면 작금의 파국은 애초부터 잉태조차 되지 않았으리라는 게 노동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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