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공계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에 아지노모토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움이 앞섰다. 일본의 ‘신인류’들이 역동적인 소니 대신 안정성 위주의 아지노모토를 택했다는 사실보다는 한동안 잊혀졌던 이름이 다시 떠오른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쉰 세대’에게 아지노모토는 외래어같지 않은 외래어이다. 인공 감미조미료를 처음 개발한 회사명이 일반명사화한 이 단어는 엄마가 차려주던 식탁의 밥 내음이 배어있다. 이 아지노모토를 이어 미원(현 대상), 미풍(백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이 단어는 기억 속 저너머로 차츰 사라졌다.
비단 친숙한 일본어가 이 뿐이랴. 운동회날 ‘준비, 출발’ 구호보다는 ‘요이, 땅’이 익숙했고 “아가야 나오너라..”로 흥얼거리던 달마중이라는 노래도 훗날 알고 보니 일본 동요이다.
이른바 왜색으로 불리던 일본풍은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문화코드였다. 내용뿐 아니라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시스템 역시 일본의 잔재 투성이였던 시절이다. 빠른 국가 발전을 위해 선진화된 일본 제도를 답습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필연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만큼 일본을 깔보는 나라 또한 세계 어디에도 없을 듯 하다.
1970년대말 이미 세계 최고 국가로 불리운 일본이다(1차대전전 제국주의시대 이미 열강이었지만). 당시 에즈라 포겔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저팬 No.1(Japan as No.1)'을 통해 세계 주요산업국의 반열에 올라선 일본을 애써 부정하는 서구 선진국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인구 7000만명에 불과한 ’대영제국‘의 세계 지배는 인정하면서 영국보다 많은 1억이상의 인구와 넓은 땅덩이를 가진 일본의 제패는 인정 못하냐는 일갈이었다. 이후 일본의 세계 경영은 눈부실 정도이다.
비록 일본이 장기 침체끝에 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중국에게 넘겨줬더라도 ‘준치’는 여전히 준치이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는 늘상 일본을 라이벌로 여겨왔다.
인구만 해도 3배(남한 인구)에다 선진국인 일본이 이를 인정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본은 타도의 대상인 동시에 언제든 넘볼 수 있는 만만한 상대였다.
그래서 인지 유독 일본 ‘곤조’도 우리 앞에서는 주눅 든다. 지난 WBC때도 그랬지만 각종 스포츠의 한일전에서도 우리의 기세에 고배를 마시는 일본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한국인하면 '고집, 강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마 무대포 정신인 북한 때문에 더해진 습성일 수 있다.
이를 극대화한 사건은 지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벌어졌다. 우리의 88돌이들이 일본 신세대에 한 판 완승을 거둔 일이다. 혹자들은 나아가 뒤쳐져 있던 경제 사회 분야 마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는 단군이래 절호의 분수령에 섰다고 평가했다. 일부 분야에서 이미 우리에게 추월당한 일본의 위기감 또한 팽배해진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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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그들의 제도를 모방해왔던 우리의 추격이 가능했는지 물을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답은 이전 세대를 거부한 일본의 `숙명`에서 찾아 본다. 패전국민이 된 일본의 전후세대(부이비 부머)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교육부터 시작했다. 주체성보다는 개인적 가치관을 중시한 `평화헌법` 정신속에 이전 전투적이던 집단의 치열함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 베이비 부머는 늘 국가관과 국가 발전의 소명을 귀에 배기도록 듣고 자랐다. 그들이 키워낸 자녀들이 이제 주눅 든 일본의 자녀 세대를 넘보는 것은 어쩜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