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돼지야, 또 미안하다

[광화문] 돼지야, 또 미안하다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2010.02.10 07:16

돼지들에게 또 미안한 일이 생겼다.

지난해 여름 멕시코에서 괴질이 발병하자 '스와인 플루(Swine Flu. 돼지독감)'로 명명해 애꿎은 돼지들만 욕 먹게 하더니 또 ‘돼지들(PIGS)’ 때문에 세계가 시끄럽다고 난리이다. 돼지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신종플루 사태처럼 이번에도 돼지는 자신의 이름을 도용당한 채 수난을 겪는다.

돼지 못지 않게 당혹스러운 곳은 돼지라고 거론되는 국가들이다. 이른바 ‘PIGS'는 이전 골드만삭스가 주목되는 신흥시장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첫 이니셜을 따 ’BRICs'로 부른 것과 같은 신조어이다.

유럽국중 가장 먼저 금융위기의 제물이 된 아일랜드를 비롯해 위기과정에서 국가 재정적자와 채무 문제가 부각된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특정하는 용어이지만 통상 동병상련인 유럽국가들의 현 위기 상황을 대변하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주로 증권가 보고서 등에 오르내리던 이 용어가 일반에 노출된 시점은 지난해 11월 ‘두바이 사태’ 당시이다. 두바이 모라토리엄 가능성에 물린 유럽 금융권의 위험이 부각되며, 특히 재무구조가 취약한 남부 유럽권 ‘PIGS' 국가를 필두로 한 글로벌 국가재정 문제가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러던 PIGS용어는 포르투갈이 지난 3일 당초 예정된 5억유로 채권 발행 규모를 3억유로로 축소시키며 ‘완전’ 표면화했다. 포르투갈이 지른 불길이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는 그리스, 스페인으로 번지며 크레디트 디폴트 스왑(CDS)이 치솟아 폭락장을 유발하자 일부 언론들과 애널들은 ‘돼지 꿀꿀에 세계가 놀랐다’는 등 싸잡아 난도질했다. 특히 ‘튀는 걸 좋아하는’ 국내언론들의 제목이 더욱 자극적이었던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돼지라는 단어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복과 다산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게걸스러운 탐욕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번 경우 후반 범주에 속하게 된 당사국들은 글로벌 동요를 가져온 원죄가 있지만 속상할 일이다.

더욱이 전혀 무관할 법한데 한데 휩쓸려 같은 `놈` 취급을 받는다면 그 억울함은 더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이탈리아가 그 험한 꼴을 당했다. 이탈리아의 우니크레디트은행은 5일 보고서를 통해 PIGS의 I는 이탈리아가 아닌 아일랜드라고 강변했다. 주로 남부 유럽권에 걸쳐 CDS가 오르며 이탈리아가 뭉뚱그려 PIGS 취급을 받자 분기가 탱천한 것이다.

우니크레디트는 이탈리아의 경우 신용등급도 안정적이고 민간부채도 상대적으로 낮아 위기와는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비록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5.3%이지만 문제가 된 나머지 3국(GPS)의 9∼12%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G7인 이탈리아는 재정, 국가부채문제에서 EU 27개국중 ‘중간위험 국가군’으로 분류돼 있다. EU 집행위원회(EC)측 분류에 의하면 위험부담이 더 높은 ‘고위험 국가군’에는 오히려 영국이 포함돼 있다. 당사자로서 분통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사례는 우리도 10년전 당했다.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 등 동남아시아국가들의 외환 문제가 불거지자 우리는 외환보유고 등 사정이 전혀 다르다며 강건너 불로 인식했다. 그러나 월가 투자자 등의 눈에는 `그 놈이 그놈`인 통칭 `아시아 위기`로 뭉뚱그려지며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치달았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꼭 돼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더 정확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독설가인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는 국가재정적자 문제는 오히려 미국과 일본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냐'는 글로벌 이슈라는 지적이다. 돼지를 탓하기에 앞서 자신들부터 돌아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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