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우리 국제경제부는 이례적으로 한산했습니다. 세계 주요 뉴스 메이커들이 모두 경주에 모여든 때문입니다. 말을 달리해 트러블 메이커들이 우리 '영업권밖'에 있으니 그들이 저질러 놓은 온갖 뒤처리를 감당해야했던 부원들의 손도 잠시 한가로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요20개국(G20)에 세계 인구의 2/3이 살고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80%를 반영하는 정당성, 대표성이 있다 손 치더라도 참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국가가 200개가 넘는데 상위 10%가 결정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으름장이 다반사인 국제사회입니다.
이를 선과 악으로 명확히 규정하기는 더더욱 모호해 보입니다. 요즘 최대 이슈인 세계 무역 불균형, 환율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두 당사자인 G2 미-중간의 줄다리기를 보면 엎치나 되치나 매 한가지 같습니다.
미국은 글로벌 임밸런스(무역 불균형)의 원흉으로 중국을 지목합니다. 위안화 가치를 낮게 '조작'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며 양국간 무역 역조를 키운다고 매도합니다.
반면 중국은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하는 재정적자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밖으로 돌리는 미국의 술책으로 치부합니다. 지난 6월 위안화를 달러 등과 연동된 바스켓제로 환원한 후 위안의 지진한 절상은 요즘 맥 못추는 달러때문이라고 오히려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속내의 일부도 드러냈습니다. 급격한 위안 절상시 아직 외부 노출에 취약한 중국 기업들이 모두 쓰러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가 무섭습니다. 기업이 줄 도산하면 경제가 거덜나고 중국이 흔들리면 세계가 위험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은 이제 '한 방'도 갖고 있는 군사대국입니다.
양자간 대립에서 우리가 누굴 '선'이라고 편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주장이 리밸랜싱(재구조화)을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상 수출 흑자국인 우리는 조용히 그 사이에서 우리 '잇속'만 챙기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기실 경주에 모인 G20 재무장관들이 환율전쟁 저지를 위한 타협의 공동합의문을 만들어냈지만 그 속에는 각자의 계산된 이해득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행동 양태를 통해 사회적 정의를 규정하고자 했던 라인홀드 니버를 연상해 봅니다. 니버는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에서 개인으로서는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의 이익도 배려할 수 있지만, 사회는 종종 충동과 집단적 이기심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로 순박하고 부지런한 독일인들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파쇼 지도자를 만나 집단 광기에 빠지고 퓨리턴의 나라 미국에서는 극단적 인종차별주의 KKK단이 출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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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수가 옳다고 하는 일이 꼭 정의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요즘 회자되는 공정이라는 단어도 매 한 가지입니다. ‘공평하고 올바르다’라는 사전적 의미에는 분명 다수라는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이로 따지자면 인구 13억인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나라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늦둥이가 하나 있습니다. 여느 집 아이들 마냥 가끔 생뚱맞은 말로 날 놀라게 합니다. 최근 손잡고 마실 나간 길에 아이가 말했습니다.
"난 행운이 있나봐" "그래. 왜?"물었습니다. 학교 갖다오는 길 도로변 작은 풀숲에 돋아난 클로버중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와! 좋았겠네.. 그래서 어떻겠는데" 다시 물었습니다. "응, 나는 찾았으니 여러 사람들도 행운을 가지라고 놓아두었어" "(엥!!)" 나오던 말을 급히 닫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야! 그걸 꺾어서 책갈피에 두고 행운을 내가 간직해야지' 아마 이런 속물적 말을 내뱉었을 것입니다.
이 애가 살아갈 이 땅이 더욱 경쟁이 심하고 돈과 물질이 판치는 세상일까 두렵습니다. 험한 세상에 자식을 내놓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위정자들에게 신학자였던 니버의 기도문을 올립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