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술 권하는 사회

[MT시평]술 권하는 사회

류병운 기자
2011.07.21 09:45

미화원들이 엄청나게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미화원의 비질 사이로 토사물과 함께 쓰러져 있는 '필름 끊긴' 사람도 보인다.

취한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주점 입구에 걸린 '아침 8시까지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는 '한잔 먹세…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잔 수를 세며/ 무진무진 먹세…'라던 송강 정철의 권주(勸酒)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것은 보드카문화 속에서 "과음은 국가적 재앙"이라며 술과 힘겨운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의 풍경이 아니다. 젊은이의 거리라는 서울 어떤 곳의 이른 아침 풍경이다.

만취가 용인되는 우리 술문화에 내포된 잠재위험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회, 정부 모두 무덤덤하다. 태풍의 눈에서 일광욕을 즐긴다고 할까. 최근 술과 정크푸드에 대한 건강부담금 도입 시도가 정부의 건강재정 책임회피용 '죄악세'로 매도되자 보건복지부는 현재 추진의사가 없다며 슬며시 발을 뺐다. 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다.

여기서 다음 가설적 상황으로 사회와 음주자에 대한 음주 위험을 클로즈업시켜 보자. '갑'은 절대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술을 마시면 보통 대리기사를 불러 귀가한다. 그런데 어느날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차츰 취해 '대리기사를 불러야 할 상황'조차 인식 못하는 상태로 빠져버린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음주운전과 교통사고로 이어져 다른 사람에게 상해·사망의 피해를 입히게 된다. 물론 사고도 인식 못해 '뺑소니'가 된다.

문제는 음주운전만이 아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강력범죄 중 취중범죄가 36.7%라고 한다. 폭행 및 상해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술은 종종 범죄 실행의 에너지가 된다. 강화 해병부대에서 동료를 사살한 김모 상병도 소주 한 병으로 범죄에너지를 보충했다. 물론 음주행위로 스스로를 심신상실이나 미약상태에 빠뜨리고 이 상태를 이용해 범죄를 실행하는 이른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주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범죄를 술에 취해 저지르는, 형법상 책임이 감면되어야 할 경우도 적잖이 발생한다. 물론 그러한 감면이 쉽게 인정될 리는 만무하다.

만취 자체를 금지하지 않으면서 만취 상태에서 어떤 행위를 법으로 금하거나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너무 늦다. 예컨대 명정상태에서의 교통사고, 뺑소니에 대한 엄격한 처벌도 '과음해서는 안된다'는 도덕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난간도 없는 절벽을 오르도록 하다가 결국 아래로 떨어져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의 조치다.

자기행위에 대한 자기책임원칙이 분명한 미국에도 음주범죄 이전 만취상태에 빠지는 것을 규제하는 여러 입법 예가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또는 만취상태, 즉 퍼블릭 인톡시케이션(Public Intoxication)을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 이미 술에 취한 사람이나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주점에 민·형사 책임을 묻는 '술집법'(Dramshop Act) 등이 그것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시절 당시 19세 대학생이었던 그의 딸이 술을 소지하거나 사려는 21세 미만자 처벌과 목격자의 신고의무를 규정한 텍사스주류법을 위반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음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성숙한 술문화를 위해 만취를 규제하는 입법이 시급하다. 술건강부담금도 부과되어야 한다. 충남경찰청이 시작한 알코올성 상습폭행범, 즉 '주폭(酒暴) 척결'도 전국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더이상 '술 권하는 사회'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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