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곪아가던 대학등록금 문제가 마침내 터졌다. 소득 위축, 중소기업의 고난, 고물가, 과잉채무, 고실업, 저축은행 부실 등 날로 누적되는 경제문제조차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있다. 한국인, 특히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은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익숙한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경제학자의 대학교육에 대한 분석 역시 일상적 상식을 넘지 않는다.
적절한 대학교육이라면 생산성과 임금을 높이므로 수요가 생겨난다. 대학순위가 능력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고, 순위별로 대학의 수가 제한적이니 독점적 공급구조가 발생한다. 더욱이 대학은 일단 들어가면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전속시장(captive market)이다. 이런 시장이라면 가격인상은 정해진 일이다.
교육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다. 가격이 인상되어도 제품의 질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학에는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규제하다보니 무리가 뒤따른다. 지배구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정보가 많은 자에게 지배권을 넘길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경영자에게 많은 의사결정권을 넘긴다. 교육에 대한 정보는 교수에게 집중되는데 촘촘히 짜여진 규제가 손발을 묶고 있다. 독점을 찬미하는 이들은 독점의 이윤이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는 원천이자 종잣돈이 된다고 하지만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부과되는 규제는 냉소를 낳고 있다.
생사가 찰나에 엇갈리는 야전상황을 후방부대가 지시하려 한다면, 그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답답한 언론이 가세해 상황을 악화시킨다. 주요 일간지들이 대학평가에 나선 지 오래나 획일적 양적지표에 철저히 함몰되어 있다. 대학간 경쟁몰이를 한다 하나 결국에는 대학의 끝없는 허례허식과 지출만을 장려할 뿐이다. 획일적 양적지표는 정부의 재정지원 기준에도 활용되며 대학을 지출확대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의 대학들에 5만달러 국가도 주저할 시설기준을 무차별적으로 들이밀면 어찌하란 말인가. 기가 막힌 점은 우리의 양적지표가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에서나 찾아볼 수 현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대학생에 관한 한 정부, 언론, 대학, 기업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허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비난과 조소로 시간을 보내거나 뒤로 미룬다면 무책임하다.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가? 인적자원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선진 한국으로의 남은 여정은 어떠한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일본의 대국굴기의 첫 단추는 일반대중의 교육팽창이다. 인적자원 외에 의지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리는 선진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교양 있는 시민사회 외에 무엇을 그릴 수 있는가!
독자들의 PICK!
전문대 등을 포함한 고등교육에 관한 인류의 보편적 합의는 1976년 공표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보여준다. "모든 적절한 수단, 특히 무료교육의 점진적 도입을 통해 모든 사람이 역량에 따라 고등교육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학진학률이 우리보다 아직 낮은 선진국조차 이 약속의 실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교육은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아니기에 버블로만 돌릴 수 없다. 모든 산업에서 요구하는 교육의 수준을 읽어보라. 또 소득수준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 행복은 어떤 형태로든 대학교육과 관련된다.
교육열이 유난스런 한국인에게 닥친 이 도전은 한국의 운명이다. 전인미답의 상황이기에 어떤 나라에도 알려진 해법은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도 중요하지만 응급조치도 간절하다. 우리의 100년 운명이 걸려있고 약동해야 할 청춘들에게는 발등의 불이다. 비난과 조소, 그리고 자기비하를 멈추고 응전에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