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채용, 대한민국을 바꾼다]
경기 부진이 계속되면서 좀처럼 고용을 늘리지 않고 있는 미국 대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신설되는 자리가 있다. 최고 다양성 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라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직책이다. CDO는 채용과 인사관리는 물론 기업 윤리와 법률 준수,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소수인종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CDO나 CDO처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총괄 임원이 있는 기업의 비율은 60%로 절반이 넘는다. 이는 지난 2005년 조사 때 20% 미만에서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자리인 만큼 CDO의 65%가 여성이고 인종별로는 37%가 흑인이다.
미국 기업들이 앞 다퉈 CDO를 신설하는 이유는 직원 구성의 다양성이 기업 이미지를 높일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이직을 줄이고 더 나아가 혁신을 활성화한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미국의 난방 및 환기장치 제조업체인 잉거솔 랜드는 올초 여성과 소수인종의 채용을 늘리고 승진을 장려하기 위해 CDO를 신설했다. 잉거솔 랜드는 여성과 소수인종 직원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되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리오스와 요플레 등으로 유명한 미국 식품회사 제너럴 밀스의 켄 찰스 글로벌 다양성 부사장도 지난 6월 미국 의회의 '고용평등' 공청회에 참석해 직원들의 인적 구성이 다양해야 각계각층의 소비자들을 포괄할 수 있다며 직원의 다양성이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기업들의 고용 다양성 정책은 소수자 배려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수자 배려 정책은 과거 차별의 결과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고용평등 조치를 의미한다.
소수자 배려 정책은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5년에 하워드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수년간 다리가 묶여 있었던" 사람들은 달리기 경주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된 개념이다. 과거 차별의 결과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 배려 정책은 린든 대통령이 개념화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공공 분야에서 행정명령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방정부와 방위산업에서 고용 차별을 금지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에 이를 연방정부 기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프로젝트로, 존슨 대통령은 정부 조달업체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물론 연방정부에 직간접적으로 납품하는 업체까지 고용평등 목표를 세우고 고용시장에서 채용 가능한 소수자의 비율만큼 직장 내에 소수자 직원의 비율이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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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배려 정책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비판도 받고 소송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다만 대학 입학이나 직원 채용시 소수자의 비율을 숫자로 정하는 쿼터제는 1978년에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쿼터제를 운영하는 대신 소수자를 대상으로 채용 광고를 따로 내거나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개발해 직접 채용을 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소수자 배려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소수자 배려 정책에서 중요한 점은 백인과 흑인, 혹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채용 기준을 적용해 흑인이나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한데도 채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같은 차별적 채용 기준은 흑인이나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어 백인 남성들의 역차별 소송뿐만 아니라 소수자들에게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7월, 미국 대법원이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시가 흑인 소방관들은 거의 통과하지 못했던 승진시험을 폐지해 역으로 백인과 히스패닉 소방관들의 권리를 제한했다고 결정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결정은 소수자 배려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능력을 무시한 소수자 배려 정책은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는 대학 입학시 소수자 배려 정책이 유지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학 입학시 소수자 배려 정책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기업에서 채용 가능한 대졸 소수자들의 인력풀 자체가 축소되고 기업 내에서도 소수자들의 승진 기회가 더욱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려면 대학이 앞서 소수자 배려 정책으로 사회적 약자를 고급인력으로 교육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런 점에서 백인 여학생 애비게일 피셔가 텍사스 대학에 지원했다 소수자 배려 정책 때문에 탈락했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미국 대법원이 조만간 내릴 결정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소송 결과에 따라 소수자 배려 정책의 방향이 크게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