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은 국부 지킴이, 수수료 깎을게 아니라···"

"자본시장은 국부 지킴이, 수수료 깎을게 아니라···"

대담=정희경 부국장 겸 증권부장, 정리=권화순· 사진=이기범 기자
2012.09.24 06:35

[머투초대석]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단순한 수수료· 이자 인하는 자본시장 순기능 저해

국민연금 수익률 1%p 높이면 고갈 시점 9년 늦춰

"자본시장을 국부의 지킴이, 국부 증대 창구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분배를 앞세워 단순히 수수료를 깎아라, 이자를 내리라고 할 게 아니라 자본시장이 순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만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사진)은 자본시장을 대하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 섭섭함을 내비쳤다.

한국투자증권의 사정은 그나마 낫긴 하지만 증권업계는 거래대금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투자업의 영토를 넓힐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고 되레 파생상품거래세 도입 추진으로 증권사들을 옥죄고 있다.

유 사장은 "자본시장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야 순기능을 다할 수 있다"면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치권에서 파생상품거래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 여부도 관심사인데요.

▶자통법이 통과될지 안될지 지금 선뜻 전망하긴 어렵습니다. 사실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증권사가 대박 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금융투자업이 지속적으로 영역을 넓혀나가면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는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법조항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과연 금융투자업 발전을 위한 정치권의 컨센서스가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입니다.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시장의 공익성이 화두로 떠올랐는데, 단순히 수수료를 깎고, 이자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협소한 시각입니다. 자본시장이 갖고 있는 본연의 역할과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게 중요하죠.

―자본시장의 대표적인 순기능이 기업의 자금조달 역할인데.

▶자본의 배분 측면에서 은행은 '안전자본' 역할을 하고 증권은 '모험자본' 성격이 짙습니다. 증권사는 중소기업이나 초기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고 있죠. 이는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의 90%는 중소기업이고, 고용의 80%는 중소기업에서 일어납니다. 결국 중소기업이 잘돼야 고용도 늘 수 있는 구조인데, 그런 면에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인 증권사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죠.

노후문제도 국민연금이 다 해결하지 못합니다. 국민연금연구소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 평균 운용수익률 1%포인트만 상승해도 기금고갈 시기가 9년 늦춰집니다. 그만큼 운용수익률이 중요하단 얘기입니다. 국내 금융자산의 운용수익률 1%포인트만 높여도 국부가 늘어납니다. 노후를 대비해 증권사가 장기투자 상품을 공급하고 자산운용사들이 자금을 불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을 해줘야 합니다.

―자본시장이 잘 돼야 국부가 늘어난다는 논리네요.

▶그렇습니다. 증권사를 포함한 자본시장이 국부의 지킴이라고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외환위기 때 런던에서 외국환평형채권(외평채) 발행을 지켜봤습니다. 금리를 너무 높게 주는 바람에 발행 이후 가격이 급등했는데요. 우리 금융기관이 참여했더라면 이런 국부유출은 없었을 겁니다. 외국계에겐 오랫동안 거래한 자기들 고객이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한국, 우리기업이 '넘버원'이라는 점에서 국내 투자은행(IB) 육성도 중요합니다.

―지금은 딜 확보 못지않게 해외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도 금융자산이 어마어마하게 쌓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잘 운용하느냐가 국가의 부 측면에서도 중요하죠. 외국계 금융사에만 맡길 수 없습니다. 국내금융사 중에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자산운용사들이 세계시장에서 내로라하는 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용만 잘하면 전세계에서 돈이 몰릴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경쟁력이 있어도 먼저 국내 시장이 성숙하지 않는다면 한계에 부딛힐 수 있습니다만.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시장이 국내이니 한국에서 경쟁력을 가져야겠지요. 또 해외에서의 운용역량도 키워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시 외국계만 쓸 게 아니라 국내 금융투자회사나 운용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올 연말, 내년 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단기적으로 안정감은 찾은 거같습니다. 유럽계 은행들이 스페인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충당금을 쌓아놨기 때문에 위기가 이탈리아로 전이되지 않는다면 유럽은 안정을 찾을 겁니다. 단기 유동성 랠리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아요. 돈의 힘으로 버텨왔는데 지속하긴 힘들죠. 어찌됐건 안정되려면 문제점 치유과정이 필요하고 (문제점을) 계속 도려내지 않고 갈 수는 없습니다. 이 과정이 나오면 시장은 충격을 받습니다. 내년에도 보수적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국내적으로 올 연말 대선 등 정치적인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소 6개월은 정책혼선기 내지는 공백기가 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 기간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 기업들은 눈치 보느라 투자도 안할 것이고. 밖으로 보면 글로벌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과감히 투자할 수도 없죠. 무엇 하나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증권사 내부적으로도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증권사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릅니다. 글로벌 IB들은 규제 때문에 못하는 비즈니스 본부를 없애고 주식, 채권 중개 등 전통적인 업무만 남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비즈니스에 집중해서 비교적 덜어낼 부분이 많지는 않은데요. 과잉된 부분을 조정하는 차원에서 증권사들이 지난 몇 년 사이 늘려놓았던 점포를 통폐합하고 인력을 줄이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채용계획을 내놨는데요.

▶저희는 상시 조율을 해서 특별히 구조를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수년간 점포수가 크게 바뀌지 않아 지금 굳이 줄일 필요가 없습니다. 3~4년 후 다시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가정할 때 경쟁자를 앞서기 위해선 지금 더 뽑고 더 키워서 좋은 인력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직접 캠퍼스에 찾아가 대학생들에게 채용설명회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올해가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학생들의 간절함과 절심함은 예년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했으면 더했지요. 취직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가 깊어졌는데, 그만큼 절실한 거겠죠. 증권사가 요즘 어렵다고 하니까 예년보다 찾아오는 학생 수는 줄었습니다. 채용 설명회에 가서 무조건 좋다고, 무조건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는데 그걸 극복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만 도전하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일부 증권사가 해외법인을 철수하고 있는데 한국투자증권은 소폭 흑자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사가 해외에서 당장 돈을 벌기는 쉽지 않습니다. 글로벌 IB(투자은행)들도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서 서두르지 않고 들어오는데요.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해외진출 전략을 짤 때 잘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또 잘할 수 있는 부문에 자원을 집중하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다져나가야 합니다. 해외에 진출해서 단기에 돈을 벌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몇 년의 플랜을 갖고 있으신가요.

▶뉴욕·런던·홍콩시장에는 20년 전에 나갔습니다. 이머징시장은 최근에 들어갔는데 20~30년이 지나야 꽃이 필 수 있다고 봅니다. 베트남 현지법인의 경우 지금은 정말 작아요. 잘 키워서 그 나라에서 톱클래스로 키우고 다른 이머징국가에도 진출해서 아시아·이머징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선진국 금융시장에 가서 한국(금융상품)만 팔 게 아니라 베트남도 팔고 이머징국가도 팔 수 있는 복합플레이어가 되려고 합니다. 아시아지역을 대표하는 플레이어가 되는 게 비전입니다. 당장 속도가 안난다고 해도 초조해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져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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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화순 기자

안녕하세요. 금융부 권화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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