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 있으면 혼나야죠. 하지만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회의 증시 국정감사를 나흘 앞둔 14일 한국거래소 A팀장의 한숨은 길었다.
2009년 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국감을 받은 지 올해로 4년째. '쓰나미급' 자료 요청과 의원들의 윽박지르기에 이골이 났을 법도 하건만 이번 분위기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증시가 침체될대로 침체됐는데 해주는 건 없이 죄인 취급만 하는 것 같다는 불만이 적잖다"며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만 해도 국회에 올라간 게 1년 전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와 함께 국감을 받는 코스콤, 한국예탁결제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품삯'도 못 받는 막일꾼 신세라는 자조가 나온다.
올해는 지난 봄 총선에서 당선된 새내기 의원들의 '의욕'에 기초자료 요청까지 쇄도하면서 '본업'을 제쳐두는 날이 부쩍 늘었다는 후문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자료를 모두 달라는 식이라 의원별로 라면박스 한상자씩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며 "우리가 국회 직원이 된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시장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시중 증권사의 경우 직접 국감을 받지는 않지만 정치권에 대한 서운함이 국감을 받는 기관들 못지않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내 증시 거래대금 급감 등 대내외 먹구름이 가득한데 정치권이 증시 살리기는 미뤄두고 언론 조명을 받을 만한 '건수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한 대형증권사 임원은 "평소에는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신경 안 쓰다 국감 때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잘못만 지적하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감은 중요하다. 국회의 권위가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도 추락했지만 국감의 가치는 단 한 건의 비리를 적발하는 것으로도 분명 존재한다. 설령 그런 비리나 오류를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존재 자체만으로 부실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건수 찾기와 호통 일방의 국감은 곤란하다. 국회는 잘못을 찾아내면 끝인 '감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통만 치기 전에 국회도 시장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진정성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