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여든, 33년 4개월을 회사를 키우는데 바쳤고 중년의 아들이 둘이나 있지만 결혼 5년째인 아내에게 모든 걸 맡겼다.

영풍제지(4,810원 ▲10 +0.21%)의 이무진 회장이 보유주식 전량을 35세 연하의 재혼한 처에게 증여해 화제다. 평소 거래량이 워낙 없어 관리종목에 처할 위기에 놓이곤 했던 영풍제지가 4일 에는 4만주를 넘어서며 9% 가까이 급등했다.
영풍제지의 주인은 지난해 1월 경영에 나선 노미정 부회장으로 바뀌었다. 노 부회장은 2008년께 이 회장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부회장의 이력이나 경영 능력에 대해선 검증된 바 없다. 제지업계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영풍제지를 알토란 회사로 키운 이 회장의 이번 선택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이 회장에게는 장성해 경영을 맡아본 두 아들도 있다. 123만여주가 넘는 회사 주식을 이들에 나눠주지 않고 노 부회장에게만 증여한 이유가 뭘까.
◇실패로 돌아간 투자사업에 2세 경영 마감= 시간은 불황을 맞아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이겨낸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지사업은 제품 원가에 따라 부침이 크고 사양산업으로 여겨지고 있었고 70대를 바라보는 이 회장도 경영권 승계 이후를 자신하긴 어려웠다.
고민 끝에 2002년 1월 보유주식 113만8452(51.28%) 전량을 23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매각대금이 회사가치보다 너무 낮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영업이익이 106억원에 달할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결국 나흘만에 매각결정을 철회하고 계약금을 날렸다.
장남인 이태섭 전 사장의 2세 경영은 이때 본격화됐다. 2009년 퇴임하기까지 6년 6개월간 대표이사로 주요 의사결정을 맡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는 대표 자리에 오르자마자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부터 부동산개발사, IT기업 등 인수에 손을 댔지만 손실을 봤다. 영풍제지는 운영자금을 빌려주거나 대출보증을 서야했다.
특히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야심차게 벌인 서울 중구 황학동 아크로타워 분양사업도 부메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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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자실패는 진흥상호저축은행 등 2대주주가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입할 빌미를 제공했고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단순 투자목적이라고 밝혔으나 당시 진흥상호저축은행의 지분율은 13.99%에 달했다.
결국 2009년 3월 이 사장이 보유지분을 정리하고 경영에서 물러났고, 이 회장이 다시 대표이사를 맡았다. 차남인 이택노 이사가 등기임원에 올라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이마저 오래 가진 못했다.
◇노 부회장에 관심 폭주, 홈페이지 '다운'= 노 부회장이 등장한 것은 이 이사가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후인 지난해 1월.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이후 지분을 4%대로 늘려 후계구도를 짐작케 했다. 이 회장의 두 아들은 더 이상 회사 주식이 없다.
이번 증여로 노 부회장이 확보한 주식의 평가가치는 어림잡아도 200억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이미 두 아들의 경영능력을 시험해본 이 회장이 향후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미리 증여를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밖에 지난해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가가 상승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증여세를 적게 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영풍제지 홈페이지(www.yp21.co.kr)은 이 회장과 노 부회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트래픽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영풍제지 관계자는 "증여는 최대주주의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 회사 차원에서 답변하기는 어렵다"며 "노 부회장은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경영총괄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영풍제지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 873억원에 영업이익은 102억원을 기록했다. 분기말 이익잉여금은 737억원, 부채비율은 19.4%에 불과한 우량 중견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