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차환 우량자산으로 해결가능 주장..."산은 신용보강하면 자산유동화 여전히 가능"
"CP(기업회생) 전체 차환 규모는 일부 우량자산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은행의 협조를 통해 차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고 해결에 나서겠다".

현재현동양(802원 ▲4 +0.5%)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의 일부다. 지금이라도 은행이 지원을 해주면 보유자산을 활용해 개인투자자들의 재산 손실을 줄이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채권은행 주도의 회생작업을 마다하고 법정관리를 선택한 현 회장이 은행의 지원을 강조한 이유는 뭘까. 현 회장 발언에는 여러 속내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회장은 지난 달 추석 직전 금융당국의 주선으로 산업은행을 찾아갔다. 산은은 그룹 주력사인 동양시멘트와 (주)동양의 최다 여신은행이다.
당시 동양그룹은 1조원이 넘는 CP 상환 자금 마련을 위해 최소 60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다. 현 회장은 산은 측에 동양파워, 동양시멘트 지분 등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대출(ABL)과 신용보강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지원 근거도 여력도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STX그룹 사태로 부실이 커진 데다 회사채나 CP 등 시장성 차입금은 발행 기업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게 산은의 입장이었다.
동양그룹은 이후 잘 알려진 대로 친족기업인 오리온그룹에 손을 벌렸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막판까지 진행한 협상마저 결렬되면서 결국 주요 계열사 5곳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 회장은 e메일에서 "시장 분위기가 오래 전 기울어진 상태였고 저평가된 모든 자산을 담보로 친지와 협력사들에게까지 신용보강을 요청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썼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동양이 회사채나 CP를 찍어 근근이 연명한 것은 은행권이 2010년부터 대출 한도를 줄인 영향도 컸다"며 "현 회장이 개인적으로 은행들에 느낀 섭섭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e메일에서 "때늦은 추가대출이나 자산매각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방법은 은행의 협조를 통한 CP 전체 차환뿐이라는 것이다. 동양그룹이 갚아야 하는 CP 규모(잔액 기준 1조1299억 원)는 우량 보유자산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도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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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파만파로 퍼진 이번 사태의 파장을 줄이고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늦었지만 산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산유동화를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비록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나 산은이 지금이라도 신용보강을 약속하면 일거에 자산을 유동화해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현 회장은 특히 "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 제 역할이 없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저의 책임을 물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현 회장의 구상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단과 아무런 협의 없이동양시멘트(16,210원 ▲510 +3.25%)를 법정관리에 넣은 마당에 뒤늦게 은행 지원을 요청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상 철회하기도 어렵거니와 산업은행이 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선 현 회장이 은행권에 공을 넘겨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회피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의 제안은 '실현가능성'에 방점이 찍혀 있기 보다는 투자자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간절함'의 표현이라고 본다"며 "은행이 지원을 약속하면 법정관리라도 철회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